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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윤의권 회장 (동국대 G미래&힐링 최고위 원우회)을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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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윤의권 회장 (동국대 G미래&힐링 최고위 원우회)을 만나
  • 이민영 기자
  • 승인 2020.02.10 22: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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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와 정, 그리고 가슴으로 살아 온 삶
윤의권 회장(동국대 G미래&힐링 최고위 원우회)
윤의권 회장(동국대 G미래&힐링 최고위 원우회)

“이제 나이도 먹고, 지난 날을 회상하면서 상대를 배려하고, 정을 느끼며, 가슴에서 우러나는 진실함으로 살고 싶어요”

동국대 G미래&힐링 융복합 최고경영자과정(책임교수 소재학)에서 만난 윤의권 원우회장( KCTS그룹 회장)과 첫 만남의 인사말이다.

윤 회장은 어릴 적 배고픔을 느끼고 살아서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내가 먼저 식사를 대접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는 밥을 사는 게 최고의 예우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윤 회장은 올 해 65세, 한국전쟁 종전 후 태어나 절대 빈곤시대를 겪은 분이다. 농부의 아들이기 때문에 어릴 적 무척 가난했던 시절도 경험했다.

그는 풍요보다는 결핍에 더 익숙하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허기진 배를 채워 주는 게 상대에 대한 배려이고, 자신의 도리라는 인식이 체화됐다.

그는 밥(식사)을 먹는 거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젊어서부터 가진 습관이다. 이는 그를 성공에 이르게 한 원인이 됐다. 한 때 큰 기업인으로 성공한 것도 따지고 보면 그게 성공의 요인 중 하나였다.

지난 해 동국대 최고위과정 원우회 회장으로 단독 추대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개강하는 날 첫 수업이 끝나고 4교시(뒷풀이)가 시작될 때 “제가 (식사를)모시겠습니다”고 한 그 말이 그를 회장으로 추대하게 된 계기였다.

지난 해 연말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동국대 G미래&힐링 최고위(원장 소재학 교수) 원우회 송년 비전콘서트 단체사진
지난 해 연말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동국대 G미래&힐링 최고위(원장 소재학 교수) 원우회 송년 비전콘서트 단체사진

지난 연말 송년회를 추진할 때 그는 소재학 원장(교수)가 더케이호텔(양재동)에서 송년 비전 콘서트를 진행한다고 할 때 흔쾌히 함께 하기로 했다. 그의 속셈은 원우들에게 먹음직스러운 대접(밥)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주정훈 사무총장은 “수업을 마치고 4교시(뒷풀이)가 되면 윤 회장께서 ’여러분! 오늘은 제가 모시겠습니다‘라고 말할 때 가장 얼굴이 펴는 순간처럼 보인다”고 귀뜸해 줬다.

누구나 행복하고 여유로운 표정을 지을 때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이다. 윤 회장이 행복한 표정을 지을 때는 바로 그런 때(밥을 살 때)이다.

원우들은 “이렇게 밥을 잘 사는 윤 회장은 누구인가” 궁금했다. 그를 잘 아는 변상태 회장은 “왕년에 잘 나갔던 분 중 한 분이다”고 짤막하게 말했다.

원우들은 윤 회장이 어떤 분인지 궁금해 현장에서 그의 성함 ’윤의권‘을 검색했다. 그리고 이 분이 ’대단한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순간 원우들의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주위가 술렁거리기도 했다. 기사 검색으로 알아낸 윤 회장의 삶은 대단했다. 젊은 적 그의 선행과 기부, 그리고 다양한 사회공헌 내용은 그에게 존경의 표시를 나타내기에 충분했다.

성균관대 경영관 윤의권 첨단 강의실 기증, 세광고 발전기금 및 장학금 기부, 청주시 노인회후원회장, 충북체육회후원회장 등을 맡으면서 많은 선행을 했다.

그의 삶을 양파 껍질처럼 까 들어 가 보면 볼수록 삶의 진주 같은 내용이 즐비했다. 윤 회장은 청주에서 8남매 농사꾼 아들로 태어나 5살 때 부친이 작고해 어린 시절부터 어렵게 성장했다.

초등학교 때 아이스께끼 장사를 해야 했고, 중·고교 땐 공사판을 다녀야 했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 마라톤선수가 돼야 했다. 그는 이렇게 성장해 강인한 육체를 갖게 됐고, 결핍과 인내에서 오는 삶의 지혜를 터득하게 됐다.

그는 대학을 포기하고 단돈 만원을 가지고 상경해 나이트클럽 웨이터를 하게 됐다. 이런 와중에도 그는 컴퓨터프로그램학원을 다녔다. 그 때가 1977년 경이다. 그는 미래세계는 정보화시대가 될 거란 예측으로 미래를 선제적으로 준비한 것이다. 이게 윤 회장이 성공의 미래를 열게 한 열쇠였다.

1980년 중반 29세 최연소 나이에 대기업의 전산실장에 까지 올랐다. 이후 전산 기술만 믿고 퇴사해 미국계 SW를 운영했다. 그러나 보증을 잘 못 서서 실패를 하고, 지하실 삭월세로 옮겨 살아야 했다. 이 때 그는 국내 최초 퀵서비스를 착안해 냈다.

이후 국내 최초 급여자동이체프로그램 개발, 국내 최초 신용정보업 허가(서울신용평가정보 설립자 겸 회장), 1998년 업계 최초 코스닥 상장, 민간기업 최초 신용조회업, 신용평가업 허가 (재경경제원, 금감위) 등 혁혁한 업적을 일궜다.

필요가 별명을 낳듯 그는 살기 위해 새로운 사업아이템을 만들어 냈다. 114용역, 퀵 홍보물 배달, 1998년 IMF 때 돈을 받아주는 신용정보업 등은 이런 것들이다. 그는 신용정보이용 및 법률에 관한 법률에 의해 국내 최초로 허가 받은 서울신용평가정보를 창업하고 코스닥에까지 상장시켜 큰 돈을 벌었다.

지난 해 11월 19일 우리나라 미래예측학 박사 1호 소재학 교수(원장)가 개설한 동국대 G미래&힐링 최고위 과정 입학식 단체사진
지난 해 11월 19일 우리나라 미래예측학 박사 1호 소재학 교수(원장)가 개설한 동국대 G미래&힐링 최고위 과정 입학식 단체사진

이후 민간업체 최초로 신용조회업과 신용평가업을 허가 받아 성공을 거듭해 IMF가 나은 기린아, 또는 신용정보의 전설로 명성을 떨쳤다. TV방송에서 방송MC를 8년간 진행했고, 연일 특강을 다녔다.

2004년 기업을 매각하고, 2004년 17대 총선에서 고향 청주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해 낙선의 쓴 맛을 보았다. 이후 다시 기업에 전념해 국가에 기여할 사업을 모색 중 감지시스템, 드론 잡는 안티드론, 홍채∙얼굴인식, 각종 보안시스템, 녹조현상제거시스템 등 세계 최고의 기술로 독립 운영하는 미래산업(4차 산업) 사업체를 운영해 업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

그는 이제 2세 경영에 대한 신념으로 장남과 함께 인류를 위해 한국의 산업진흥을 위해 열심히 정진 중이다.

2000년 4월 경 박영사에서 출간의 윤 회장의 저서 <채권추심 이론과 실제>는 부실채권 관리와 신용조사 및 채권 회수에 관하여 발생 원인부터 관리 및 구체적인 회수 방법까지 풍부한 사례와 필요한 서식을 곁들여 설명한 책으로 당시 전문서적 상위를 차지했고 지금도 상당히 비중 있는 도서로 알려지고 있다.

원우들은 윤 회장의 식사를 대접 받고, 그의 삶에 얽힌 스토리를 듣게 된 다음 그의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 매력이 있다고 했다. 머리보다 가슴으로 살아온 윤 회장의 삶의 괘적이 아름답게 보인다. 그는 분명 정의와 배려로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음은 분명하다. 소박하게 웃어주는 너털 웃음도 백만불짜리이다.

서울 = 이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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