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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누나에게 보낸 귤 일곱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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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누나에게 보낸 귤 일곱 개
  • 전민일보
  • 승인 2020.01.07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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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현종(顯宗)이 숙명공주(淑明公主)에게 보낸 편지가 남아있다. 여기서 왕은 누나에게 애틋한 마음과 함께 황감(귤) 일곱 개를 보낸다고 적고 있다. 그것이 왕의 선물이었다. 귤은 맛있는 과일이지만 더 이상 귀한 존재는 아니다. 숙명공주는 물론 왕인 현종조차 구경도 할 수 없었던 과일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송파 모녀와 같은 소외 계층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어서 조심스럽지만 주변 누군가에게 선물로 귤 일곱 개를 보내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현 세대의 풍요는 먹는 것에 국한하지 않는다.

25년에 걸쳐 동방 여행을 했다는 마르코 폴로여정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는 별개로 여정 자체만 놓고 본다면 현대 한국인에겐 그다지 대단할 것도 없다.

마르코 폴로가 생각지도 못한 미지의 영역까지 다녀온 한국인이 그야말로 넘쳐난다.

서울 한 번 다녀오는 것이 개학 후 얘깃거리가 되던 시절이 멀지 않다. 바로 내가 그랬다. 그런데 중학생이 된 조카에겐 뉴욕이나 프라하도 그다지 큰 감흥이 없어 보인다.

“진지는 드셨습니까.”라는 말이 정중한 인사가 되었던 시대는 이제 영원히 종말을 고한 것인가. 생각해보면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시대에 살고 있는지를 잘 인지하지 못한다.

불과 한 세기 전이었다면 김연아, 박세리는 물론 사회 각 분야에서 눈부신 성취를 거둔 현대여성 대부분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여성뿐인가. 손흥민과 류현진의 삶도 크게 달라지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나는 연예인을 폄하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그럼에도 TV에서 예능이라는 이름으로 웃고 놀며(?) 여행하는 것을 통해 막대한 부와 명예를 얻는 것은 패러다임의 전환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이다. 여기서 생각해본다. 단지 조금 먼저 태어난 이유로 자신의 능력이나 의지와는 무관하게 살다간 수많은 사람들의 한(恨)을.

이제 우리에겐 어떤 지향점이 남아있는가. 물질적 풍요를 향한 지향점이 있을 때는 그 자체로 행복할 수 있었다. 분명한 방향성과 성취가 따랐기 때문이다. 현재의 젊은 세대들이 겪고 있는 근본적 고민도 거기에서 출발한다. 아버지 세대보다 나아진 삶을 향해 나갈 수 있었던 궤도가 그들에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또 한번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고통이 따르겠지만 그것을 피할 수는 없다.

지구는 광활한 우주의 작은 변방에서조차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하다. 인간은 바로 그 먼지 같은 점에 우연히 살아남은 기적적인 존재이다. 누군가의 말대로 현 세대는 지구를 탐험하기엔 너무 늦게 태어났고 우주를 향한 모험에 나서기엔 너무 일찍 태어난 존재다.

축구장 몇 개를 더한 면적이 태양계라면 지구는 그 속에 던져진 볼펜 심 정도의 크기다. 조금 더 나가 태양과 가장 가까운 별을 찾아 나선다면 무려 4km를 가야 찾을 수 있다. 그런 별이 수천억 개가 모여 은하를 이루고 그런 은하가 또 수천억 개가 존재하는 곳이 우주다. 칼 세이건의 말처럼 외계인이 없다면 이보다 더한 공간의 낭비가 있을 수 있겠는가. 태양계도 아직 다 알지 못하는 인류에게 우주는 경이다.

인류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 만물의 영장. 그것은 누가 규정한 것인가.

46억년 지구 역사에서 호모 사피엔스만큼 약탈적이고 배타적인 종이 또 있었던가.

아종(亞種)이 없는 이유도 바로 그래서다. 그 어떤 경쟁 종도 절대 살려두지 않기 때문이다. 지구가 생명체라면 인류를 악질적 기생충으로 규정한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지구 역사가 보여준 법칙대로라면 지배 종은 멸종을 피할 수 없다. 인류가 공룡보다 더 오랜 시간 지구상에 존재할 수 있으리라는 가정은 실현가능성이 극히 적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인류가 외계인과 마주칠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왕이 누나에게 보낸 귤 일곱 개는 오늘 우리에게 의문을 던진다.

과연 지금은 어떤 것이 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 또 하나, 만일 그것이 있다면 만인이 공유하는 방안은 무엇이고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2020년 새 해엔 일곱 개의 귤이 모든 사람에게 공유되기를 바란다.

온 우주에 지구는 단 하나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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