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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단상(送年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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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단상(送年斷想)
  • 전민일보
  • 승인 2019.12.11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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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은 지난 일 년을 잊으려고 많은 사람들이 망년회忘年會를 한다. 망년회는 연말에 그 해의 괴로웠던 일들이나 시름을 모두 잊자는 뜻으로 베푸는 일종의 연회다. 우리는 망년을 무슨 명절이라도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들뜬 기분으로 한해를 마감하려 한다. 망년회가 일본에서 건너 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1,400여 년 전부터 망년忘年 또는 연망年忘이라 하여 섣달그믐께 친지들과 서로 어울려 술과 춤으로 흥청대는 일본 세시풍속이었다. 이것이 우리나라로 건너와 우리의 미풍 풍속인 양 뿌리를 내렸다.

해마다 우리의 망년회 풍습은 극성스럽기까지 하다. 직장동료나, 친구들이나, 가족끼리 갖는 망년회는 술을 마시야 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2·3차는 물론 심하면 날을 새면서 까지 마셔 고주망태가 되기도 한다. 마치 술로 한 해를 떠내려 보내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다.

우리의 본래 연말 풍습은 이런 망년회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선조들은 조용히 한 해를 되돌아보며 잘못을 반성하고 빚진 것들을 갚는 계기로 삼았다. 뿐만 아니라 수세守歲라 하여 섣달 그믐날이면 방을 비롯해서 마루와 부엌 또는 마굿간 심지어는 변소까지에도 불을 켜놓았다. 이는 부뚜막신인 조왕신의 하강을 기다리며 밤을 새우는 풍습이었다. 이 풍습은 지난 일 년 간 자신의 몸가짐과 처신에 대한 하늘의 심판을 기다리는 경건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친구들이나 가족 간에 갖는 조촐한 모임은 일본의 망년회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한 해의 마지막 무렵에 그 해를 보내는 아쉬움을 나누기 위하여 여러 사람이 모여 갖는 연말모임을 우리는 ‘송년회送年會’라 부른다. 송년의 '송'은 보낼 '송送'이다. 그러므로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송구영신送舊迎新과 맥을 같이한다. 그러므로 송년회는 차분히 한 해를 되돌아보며 정리하면서 새해를 준비하는 자리라는 의미다. 먹고 마시면서 한 해를 잊어버린다는 ‘망년회’와는 확연히 다르다. 원래 망년회의 망년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벗으로 사귄다는 ‘망년지우忘年之友’나 ‘망년지교忘年之交’에서 생성된 말이다.

‘망년지우忘年之友’ 고사에 이런 대목이 있다. 고려 고종 때의 학자 이규보의 문집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의하면 ‘나는 그때 열여덟이었다. 덕전德全오세재吳世才가 ‘망년지우’가 되는 것을 허락해 매번 모임에 함께 나갔다’고 했다. 당시 18세인 이규보와 58세인 오세재가 친구가 된 것이다. 이처럼 ‘나이 차이를 따지지 않는 사귐’이 망년회다. 이규보와 오세재의 사이를 ‘망년지교’라고 불렀다. 덕전德全오세재吳世才는 당대 최고의 문인으로 시문이 중국의 대 문장가 한유나 두보를 능가했고 한다. 그런 인물이 열여덟 애송이에 불과한 이규보를 망년지우로 받아주었다. 뿐만 아니라 이규보와 벗이 된 3년 뒤 죽자 이규보는 ‘오선생덕전애사吳先生德全哀詞’를 지어 애통한 마음을 나타냈다니 가히 파격적인 우정이다. 훌륭한 사람은 인물을 알아보고 사귐에 있어 차별을 두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망년회는 인품이 고매하고 사람 됨됨이가 훌륭하면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서로 친구로 사귀는 모임이어야 한다. 나이의 고하를 불문하고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한 해 동안 소원했던 관계를 복원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통의 시간을 잦아야 한다. 소통을 위해서 먼저 찾아가 뵙고 잘못이 있었다면 용서와 이해를 구해야 한다. 그것은 우의를 다지는 또 다른 계기와 기회가 된다.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송년의 정신이다.

우리는 입으로는 ‘비우고 살아야지’ 하면서도 실제는 비우지 않는다. 오히려 채우기에 급급한다. 억지로 비우거나 강제로 비우는 것은 비우는 것이 아니다. 큰 그릇을 먼저 비워야 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 작은 그릇을 비우다 보면 큰 그릇도 자연히 비워진다. 아둔한 우리는 무조건 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으는 재미를 인생의 낙이라 안다. 물론 소중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소중할수록 비워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썩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지난 한 해 동안 별것도 아닌 일로 멀어진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것이 오해이든 자신의 불찰이든 간에 한 해를 마감하는 순간 ‘망년지우’ 정신으로 화해해야 한다. 또한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지는 않았는지 혹시 사람들에게 피해는 주지 않았는지, 내 욕심을 채우는데 만 급급하지 않았는지?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한 해의 마지막을 보내야 한다. 참으로 후회스럽다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송년送年이다.

정성수 시인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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