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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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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의 전쟁
  • 전민일보
  • 승인 2019.11.12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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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영화를 보면서 내 생각을 했다고 한다.

“김지영은 아이가 하나인데, 당신은 둘이었어. 김지영은 시댁이 부산이었는데, 당신은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잖아. 훨씬 더 힘들었을 텐데, 나는 밤마다 술 마시고 늦게 다녔어. 미안해서 눈물이 나왔어. 이 영화는 남자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어.” 일요일 아침, 남편이 <82년생 김지영>을 혼자 보고 와서 한 말이다.

그래? 갑자기 영화가 궁금해졌다. 그 날 오후, 딸이랑 같이 영화표를 끊었다. 영화는 책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딸이 나 보다 더 눈물을 많이 흘린다. 왜? “남 일 같지 않아서...”

필자는 이 책으로 2017년에 두 번 독서토론을 했다.

매주 나가는 독서동아리에서 한 번, 직장에서 한 번. 흥미로운 것은 두 번 모두 성별 반응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나이와 관계없이 “공감했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내 이야기 같다’거나 ‘엄마가 생각났다.’라는 반응이 많았다.

반면에 남성들은 그다지 공감하지 못했다. 그냥 일상생활 이야기 같다던가, 본인이 관심이 있는 동아리나 계급의 문제에 더 공감한 경우도 있었다.

그 이후에도 나는 독서동아리에서 <페미니즘의 도전>이나 <이갈리아의 딸들> 같은 책을 추천하거나 진행을 해봤다.

나를 붙잡고 “정말 좋은 토론이었다!”라며 각성의 계기가 되었다고 말하는 회원들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너무나 좋은 책이었고, 덕분에 아내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남성 회원도 있었지만 불편해하거나 소설이지만 문제가 있는 책이라고 평하는 회원은 거의 남성이었다.

왜 이렇게 평가가 달라질까?

영화나 책을 보지도 않은 아들은 “그 거, 62년생이면 맞겠지만 82년생은 오버 아니에요?”라고 반문한다.

지금 젊은 남성들은 과거는 성차별이 심했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져서 오히려 역차별도 당하는데, 우리는 군대도 가는데 왜 호들갑을 떠냐고 묻는다.

며칠 전, 여당 청년 대변인이 비슷한 논평을 냈다가 철회한 것도 같은 맥락인 듯하다.

내가 의아한 것은 많은 여성들이 <가시고기>나 <국제시장>처럼 아버지나 남성의 무게와 아픔에 대한 책과 영화에는 공감하거나 그냥 지나치는데, “왜 남성들은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여성 연예인의 글에 댓글 테러를 하고 상영도 하지 않은 영화에 별점 테러를 할 정도로 과하게 반응하는가?”하는 것이다. (유재석, 노회찬, 방탄소년단의 RM도 이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고 밝혔지만 그들에게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여성이 지금껏 자신들이 누려온 기득권을 가져간다는 피해의식은 아닐까?

최태섭은 <한국, 남자>에서 지금껏 굳어져 공기와도 같게 된 성별 질서와 자신들에게 부여되었던 남성성에 문제의식을 갖고 되돌아보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남성들이 자신에게서 누락된 것들이 여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임을 정확히 인식하는 데서 한국 남성성의 정확한 성찰이 가능하다는 깨달음을 전한다.

김지영의 증상은 의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하지만 책을 읽은 많은 여성은 “공감한다.”고 한다.

이 지점이 이 영화와 책의 미덕이다. 김지영은 나만 이상한 것 같다고, 나만 전쟁 중인 것 같다고 울부짖는다.

“엄마는 영화를 보고 뭘 느꼈는데?” 딸이 물었다. “나? 음... 김지영은 여전히 전쟁 중이네. 그래서... 엄마는... 김지영을 응원하고 싶어~”

구성은 전주시 평생학습관장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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