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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지역 단군 사묘 국내에서 가장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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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지역 단군 사묘 국내에서 가장 많아”
  • 이재봉 기자
  • 승인 2019.10.17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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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단성전 등 10곳... 윤한주 박사, 국내외 단군 사묘 총망라'한국의 단군 사묘'발간
 

"전북지역 단군 사묘는 익산 천진전, 김제 증산법종교 태평전 등 10곳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이 세워진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윤한주 국학박사는 2017년 1월부터 2019년 2월까지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단군 사묘을 답사한'한국의 단군 사묘(도서출판 덕주)를 출간했다.

 

사묘(祀廟)란 영정이나 위패 등을 모신 전각을 말한다. 지역 단군 사묘에서 개천절마다 제례를 봉행하고 있지만 전체 개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윤 박사는 “학계에서 이강오 전북대 교수가 1980년까지 30여 사묘를 조사한 연구가 유일하다. 현장에 가보니 10개 정도는 사라진 상태였다"면서 "안내판이 없거나 내용이 잘못된 경우도 많았고 관련자를 인터뷰하고 새로운 자료를 통해 내용을 바로 잡았으며 1980년 이후에 설립한 단군 사묘도 모두 조사했다”고 밝혔다.

이 책은 전국을 4개 권역으로 나눠 총 46곳의 단군 사묘를 소개했다. 

전라도민은 국조를 모시는 것은 사대주의를 배격하고 민족의 주체성을 확립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전국 방방곡곡에 단군사묘를 건립하자는 주장이 신문에 보도됐을 정도다. 

경상도는 경상남도 문화재인 밀양 천진궁과 '칠곡군지' 1면을 차지하는 칠곡 국조전 등 단군 사묘에 관해서 지역민의 자부심이 많다. 경기도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단군 사묘가 박물관에 있다.

4개 권역이 마칠 때마다 쉬어가는 코너로 단군 에피소드를 실었다. 단군의 탄신절과 어천절의 근거를 문헌으로 제시했다. 임시정부에서 단군이 나라를 건국한 10월 3일을 건국기원절로 제정한 내력을 밝혔다.

윤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국내 단군 사묘는 총 46곳이다.

1909년부터 광복 이전까지 6곳이고 광복 이후부터 1999년까지 31곳이다. 2000년 이후에도 9곳이 더 건립된 것으로 조사됐다. 지역으로 살펴보면 광주·전라도 16곳, 대전·충청도 14곳, 대구·경상도 7곳, 강원도 2곳, 서울 4곳, 경기도 3곳이다. 

전북지역 단군사묘는 익산 천진전(1951), 김제 증산법종교 태평전(1953), 순창 단성전(1961), 진안 양명마을 단성전(1965)과 진안 은수사 태극전(1987), 군산 옥구향교(1972), 고창 단군성전(1979), 무주 신불사(1984). 남원 단군성전(1993) 등이다. 설립단체는 유교, 불교, 민족종교, 마을 등 다양하다.

윤 박사는 “전북도민들은 종교를 초월해서 국조를 모시는 것은 민족의 주체성을 확립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대표적으로 1962년 순창 유림들은 전국 방방곡곡에 우리의 조상인 단군을 모시는 묘를 세우는 국민운동을 일으키자는 주장이 신문에 보도될 정도다. 그러한 운동이 타 지역에도 단군 사묘를 설립하는 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단군 사묘는 외국에도 건립됐다는 점이다. 그 주역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왜군에 끌려간 남원의 도공(陶工)들이다. 일본 규슈 가고시마현에 단군을 모신 옥산궁(玉山宮)이라는 이름으로 신사를 건립한 8월 15일마다 큰 축제를 벌여 화합과 번영을 다짐했다. 

현재 남원 만인의총 입구 왼쪽에 자리한 노래탑에는 도공들이 고향에서 불렀던 ‘오늘이 오늘이소서’를 새겼다. 이 노래는 신관이 옥산궁에서 제사를 올리면서 부른 것이다.

오늘이라 오늘이 왔다. 제물도 차렸다. 
오늘이 오늘이구나 모두 함께 노세. 
이리도 노세 저리도 노세. 
제일이라 제일이라. 우리 어버이. 
조신(祖神:단군)을 잊지 않으리라. 
고수레 고수레 
자나 깨나 잊지 않으리.

윤 박사는 “2017년 8월 현지를 답사하며 우리의 선조들이 400년 이상 단군의 얼을 계승한 사묘임을 확인하였다. 옥산궁 건립 이야기는 1673년 정월 어느 날 밤에 옥산 꼭대기에 4m가 넘는 바위가 떨어진 것에서 유래한다. 이를 조국에서 날아온 단군바위라고 해석하였는데, 정체성을 잃지 말라는 뜻이 아닌가 생각한다”라며 “선조들이 외국에서 살면서도 조선의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고 떡과 과일을 서로 나누어 먹는 풍습을 유지했다는 점이 더 감동적이다. 이는 현재 재외교포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단군 사묘가 전국적으로 세워진 배경은 1905년 일제가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을사늑약 이후다.

일제의 침략에 맞서 국조 단군인식이 언론을 중심으로 국민들에게 확산하였기 때문이다. 단군기원을 사용했고 단군 영정을 모집했다. 단군에 관한 책들이 연이어 출간됐다. 단군 사묘의 건립 또한 단군운동의 일환이었다.

이진탁(李鎭澤)은 1913년 충청남도 논산군 두마면(옛 계룡산 신도안) 작산마을에 단군전을 세웠다. 신태윤(申泰允)은 1914년 전남 곡성에 초가로 단군전을 짓고 민족운동의 산실로 삼았다.

이종철(李鍾轍)은 1923년 구월산 삼성사의 단군영정과 제기를 가져와서 고향인 해남에 단군전을 설립했다. 하지만 일제는 민족의식을 유포한 혐의로 관련자를 투옥하며 탄압을 가했다. 단군전 사람들은 밤에 몰래 제사를 지내며 조국의 독립을 염원했다.

윤 박사는 “일제는 단군을 구심으로 한민족이 결속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어 단군은 황당한 전설이라고 왜곡해서 가르쳤다. 단군 유적지를 파괴하는 만행까지 저질렀다."면서 "이것이 민족말살정책이 아니고 무엇인가? 때문에 독립운동가들은 빼앗긴 조국을 되찾고자 단군을 정신적 가치로 삼았다. 그러한 정신으로 단군 사묘를 건립했고 광복 이후로도 확산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군 사묘는 특정 정치인이나 기업가의 후원보다 지역민이 국조를 모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성금을 모아 건립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홍익인간의 정신을 후손에게 전해야 한다는 취지다. 현재 단군 사묘를 지키는 사람들은 고령임에도 개천절 제례를 한 해도 빠짐없이 거행하고 있는 이유다. 

윤 박사는 “올해는 삼일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기념하는 역사적인 해이다. 삼일독립선언서에는 ‘조선을 세운 지 4252년’이라고 날짜를 단군기원으로 적었다. 임시정부는 단군이 나라를 처음 세운 10월 3일을 ‘건국기원절’로 제정했다."며 "선조들의 독립정신은 단군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한 정신을 잇고 있는 단군 사묘가 전국에 있지만 정부의 지원과 국민들의 관심 모두 부족하다. 우리 고장의 소중한 문화재로 생각하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한편 저자 윤한주 박사는 제주도 출신으로 중학교 1학년 우연히 글쓰기 적성을 발견하고 경성대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이후 윤 박사는 기업 홍보 업무를 거쳐 신문 기자로 활동했다. 우리나라 고유의 역사이자 철학인 '국학'을 연구해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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