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판 도가니 사건'으로 문을 닫은 자림원이 청산 절차를 진행 중인 가운데 아픈 기억을 딛고 어떤 모습으로 장애인들의 곁으로 돌아오게 될지 기대가 모아진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은 9일 전주시 성덕동의 옛 자림복지재단 부지를 방문했다. 국가인권교육원 건립과 관련, 실현 가능성 타진을 위해서다. 최영애 위원장을 비롯한 5명의 방문단은 비어있는 자림원 부지를 인권교육훈련 시설로 활용할 수 있는지 부지 환경성 등을 검토했다.
최 위원장은 이날 오전 자림복지재단에서 국가인권위 위원, 전북도, 자림원 민관대책위원회 관계자 등과 만나 재단 부지의 활용 방안 등을 논의했다. 논의 후에는 인권연수원 설립 장소로 예상하고 있는 옛 자림복지재단의 연수동과 생활동 등을 둘러봤다.
최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먼저 풀어야 할 숙제는 재단 부지 중 어느 정도 면적을 사용 가능한지와 관리 주체 문제다”면서 “인권위가 독자적 권한을 가져야 하며 일정한 정도의 면적 없이는 인권위가 움직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11일 전북도 등에 따르면 2만 1000여 평에 달하는 자림복지재단 부지는 현재 청산 절차가 진행 중이다. 청산 과정에서 부지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전북도·전주시)에 선택적으로 귀속시킬 수 있는 만큼 이를 잘 활용하면 국가기관 유치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사회복지사업법 등 관련법에 따르면 해산한 법인의 청산 후 잔여재산은 국가 또는 지자체에 귀속된다. 만일 자치단체로 귀속되면 국가에 기부채납이나 양여는 불가능하지만 의회의 의결을 받으면 국가 무상사용은 가능하다.
앞서 전북도는 지난 4월 자림복지재단 기본재산활용 기본계획수립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도는 과업지시서에 자림원 부지를 도내 장애인들의 복지 향상과 처우 개선을 위한 시설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용역 결과는 오는 9월 중순께 나올 예정이다. 다만 방향은 한 가지 해법이 아닌 여러 가지일 가능성이 크다. 부지 면적이 적지 않은 만큼 정부 정책 동향과 장애인 및 가족, 시민단체 등 관계자들의 종합적인 수요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도는 우선 '장애인 복합커뮤니티센터(1만평 규모)' 건립을 구상하고 있다. 도 재정만으로 센터를 건립하기 어렵다고 보고 부지를 국가에 귀속시켜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국가기관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장애인단체가 요구하는 ‘지역사회전환지원센터 및 장애인평생교육시설’을 도 차원에서 운영해 장애인 종합 지원센터와 거주시설 장애인 탈시설 지원, 발달장애인 평생교육기능 등 통합적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이밖에도 ‘장애인 생활문화 및 치료 체육센터’와 ‘인권 박물관 등 기억의 공간 조성’, ‘국가 인권 교육원’ 까지 국비와 도비 사업을 모두 합쳐 총 5개의 세부사업을 검토하고 있는 단계다.
도 관계자는 “부지가 기확보 돼 있고 민원 발생이 없는 만큼 최소예산을 투입할 수 있어 다양한 사업의 최적 조건을 갖고 있다”며 “워낙 부지가 넓다보니 몇 가지 방안이 함께 담길 수 있을 것 같아 연계 사업 간의 시너지효과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장애인 관련 국가기관을 유치하기 위해 고용노동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 국가인권위 등 중앙 정부 부처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시설 활용 방안에 대한 협의를 이어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한편 자림복지재단은 소속 기관인 자림원(특수학교) 원장 등이 여성 장애인들을 지속해서 성폭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난 2017년 6월 법인 허가가 취소돼 청산 절차를 밟고 있다. 당시 이 사건은 '전주판 도가니 사건'으로 불리면서 공분을 샀다.
이지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