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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과 코스모폴리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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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과 코스모폴리탄
  • 전민일보
  • 승인 2019.06.26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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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 상어조차 그 앞에선 한낱 먹잇감에 불과하다. 너무도 강력하고 지능적이며 압도적인 힘을 가진 주인공. 바로 범고래다. 그런 바다의 제왕이 결코 공격하지 않는 생물이 있다.

바로 인간이다. 범고래는 왜 인간을 공격하지 않을까?

초기 인류는 생존을 위해 수렵을 했지만 동시에 맹수의 공격으로부터 생명을 지켜야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호랑이와 사자가 그렇듯 범고래 역시 원시 인류를 여타의 먹잇감과 다르지 않은 대상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문제는 인간이 범고래를 사냥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라는 것이다. 범고래는 자신의 생존이 인간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두려움에 대한 인식과 학습이 생존요소가 되는 것은 인간사도 예외가 아니다.

을지문덕, 양만춘, 강감찬 그리고 이순신에 대한 중국과 일본의 기억이 한국사를 독자적인 영역에 존재하게 했다. 아쉬운 것은 한국사가 대외적인 부분에서 대부분 수동적 위치에 있었다는 것이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우리는 단군 이래 한국사최고의 순간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한 해 일본의 3배인 3천만 명이 국외여행을 하는 나라, 이제 한국인은 코스모폴리탄을 말할 수 있는 위치가 되었다. 그런데 뭔가 어색하다.

코스모폴리탄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은 제국이다. 로마시민권을 가진 사람이 얘기하는 사해동포주의와 속국민이 절규하는 그것이 같을 수는 없다. 평화를 얘기하는 것도 강자의 몫이다. 일제치하일본과의 공존과 평화를 얘기하는 조선인의 모습이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조선이 약자이기 때문이다. 일본제국과 중국제국, 그런데 한국사엔 제국의 경험이 없다. 한국인이 얘기하는 평화와 도덕론적 담론들이 때로 공허한 것도 그래서다.

그것은 영화 [미션] 후반부 스페인 침략자들의 총탄 앞에서 십자가를 들고 평화로운 행진을 하는 가운데 학살당하던 생명들을 떠올리게 한다. 수천 년, 아니 불과 한 세기 전 침략의 고통을 간직한 한국인이 최소한의 방어를 위한 조치조차도 평화파괴행위라며 절규하는 모습을 달리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평화와 중립이란 말은 결코 약자의 피난처가 되지 못한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설명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역사의 교훈은 되풀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유성룡은 <징비록>에서 신숙주가 성종(成宗)에게 올린 유차(遺箚)를 거론하면서 역사의 교훈을 얘기했다. 그럼에도 정작 조선인은 <징비록>의 의미조차 오래 간직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것에 주목한 것은 일본인이었다. 18세기 오사카에서 <징비록>이 출판돼 많은 일본인이 구독하는 모습을 조선통신사 일행이 목격한다. 제국의 경험이 없는 한국인은 임진왜란 전 조선인들이 그랬듯 여전히 평화만 얘기한다. 지도자의 역할은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

지도자는 구성원이 낙담에 빠졌을 때는 위로의 메시지를 통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하고 자만에 사로잡혔을 때는 통렬한 비판을 통해 반성의 계기와 더불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페리클레스가 그렇다. 그에 대해 투키디데스는 이렇게 말한다.

“명성과 판단력 모두 능력 있는 자였고, 청렴했고, 대중을 자유롭게 장악할 수 있었으며, 대중이 그를 이끈 것이 아니라, 그가 그들을 이끌었다. 부적절한 수단으로 힘을 얻지 않았기에 그들 귀의 즐거움을 위해 아첨함이 없었고, 명망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의 분노를 자극하며 반박할 수 있었다.”

페리클레스의 자취는 여전히 아테네 파르테논에 살아있다. 그가 역병으로 죽기 전 보여준 모습은 결코 영웅적이지 못하다. 그 역시 삶에 대한 미련과 미신에 대한 집착을 너무도 인간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리더쉽이 현대 민주주의와 부합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그가 보여준 통찰력과 청렴함 그리고 대중을 향해 현실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담대하게 설득할 수 있는 용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제국의 경험이 없는 한국에서 코스모폴리탄의 비전을 완성할 수 있는 지도자가 출현하길 바란다. 나 역시 평화를 갈망한다. 사족, 페리클레스는 제국의 이익에 충실하고자 했던 인물이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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