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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특집기사-참전용사들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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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특집기사-참전용사들을 만나다.
  • 정석현 기자
  • 승인 2019.06.24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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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6.25전쟁 발발 69년을 맞았다.
69년 전 선배들의 희생으로 후세들이 현재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지만 정작 그곳에서 피 흘리며 싸운 참전용사들의 이름은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가고 있다.
해군 간호장교로, 육군보병으로 전장에 섰던 참전 용사들을 만나 참혹했던 69년 전 이야기를 들어봤다.

 

-간호장교로 참전한 강진수 할머니

“지금도 피 냄새, 땀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올해 87세인 강진수 할머니.

귀가 잘 들리지 않고, 아픈 다리로 인해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어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는 것이 강 할머니의 첫 모습이다.

아흔을 바라보고 있는 강 할머니는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며 푸념을 늘어놓았지만 전쟁 당시 아픈 기억은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강 할머니는 1951년 당시 진해에서 해군 간호장교로 근무하며 환자를 돌봤다.

강 할머니는 6.25 당시 광주대학교(현 전남대학교) 간호학과 졸업 후, 해군 장교 시험에 응시해 전쟁터로 나가게 됐다.

강 할머니는 “사방이 피바다였어. 수술 중에 죽는 일도 허다했고 당직 설 때만 해도 숨통이 붙어있던 사람이 다음 날 죽는 경우도 있었어”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전쟁터 한 중심에서 죽음과 피난민들의 고통을 차마 맨 정신으로 볼 수 없었다던 강 할머니는 참혹했던 그 당시 전쟁 상황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강 할머니의 마음을 더욱 시리고 아프게 하는 건 거리에 나와 구걸하는 피난민들의 모습이었다.

“그야말로 참혹함 그 자체였지.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땅에 떨어진 것을 주워 먹는 모습, 미군들에게 구걸하며 연명하는 모습들을 일상처럼 봐야만 했어”

전쟁터에서 악몽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종지부를 찍을 수 없었다. 더욱 안타까운 건 국가가 이들에 대한 처우에 무관심이다.

선배들의 희생정신으로 오늘날 후배들이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지만, 강 할머니 등 참전용사들은 마음껏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강진수 할머니는 “전주에서 참전용사를 위한 보훈병원을 설립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하루빨리 생겼으면 좋겠다. 진료를 받기 위해 광주까지 넘어가야 하는데 우리같은 노인들이 2시간 넘게 이동하는 건 쉽지가 않다”고 하소연 했다.

끝으로 강진수 할머니는 이 말을 당부했다.

“젊은 시절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앞으로 살면 얼마나 살겠어. 이제라도 국가가 참전용사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288고지 전장에 선 강봉열 할아버지

“힘든 시절이었지... 살아있는 것만도 다행이야”

6.25전쟁에 참전해 무공훈장을 4개나 수훈한 강봉열(91) 대한민국 무공수훈자회 진안군지회장은 깊은 한숨과 함께 그날의 참혹한 현장을 힘들게 떠올렸다.

보병 제3연대 2대대에 복무중이던 강봉열 회장은 1950년 6월25일 새벽 의정부로 출동했다.

당시 그의 나이 23세.

의정부로 집결한 그의 부대는 인민군의 공격으로 지휘관과 수많은 전우들을 눈앞에서 잃고 와해됐다. 우여곡절 끝에 포위망을 뚫고 탈출한 그는 이후 수원에서 18연대에 편입하게 됐다.

18연대에 편입한 그는 치열했던 기계지구 북쪽 288고지 탈환 전장에 서게 된다. 18연대는 8월17일 새벽에 2대대가 7중대의 측방 우회 공격으로 북한군의 진지 일부를 돌파함으로써 288고지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강봉열 회장은 숨어있던 인민군이 던진 수류탄 파편이 등에 박히는 부상을 입었다.

당시 그의 등에서 흘러나온 피가 군화속에서 철철 넘쳐났다.

그는 “그 정도 부상은 아무것도 아니었어. 그곳에서 피 흘리며 죽어간 전우들의 이름은 지워진지 오래야. 요즘 학생들은 6.25가 뭔지도 모르는 걸”이라고 당시를 회상하며 서운함을 드러냈다.

그는 이후 야전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전쟁이 끝나는 그날까지 강원도 지역에서 한치의 땅이라고 더 얻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이어갔다.

1957년 7월27일. 드디어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던 3년여의 지옥같은 전쟁이 끝이 났지만 전장에 섰던 참전용사들은 아직도 부상, 사회적 무관심과 전쟁 중이다.

그는 “전쟁직후 무공훈장을 4개나 받았지만 자랑할 일도 아냐”라며 “다만 70년의 세월이 흘러 전쟁의 기억이 희미해졌지만 선배들이 지옥같은 전장에서 어떻게 싸워왔는지 후세들은 절대 잊으면 안 돼”라고 당부했다.

강봉열 회장은 현재 90세가 넘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독도침탈 망발 규탄, 역사교과서 왜곡 규탄 등 불굴의 위국정신과 투철한 사명감으로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정석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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