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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SD, 동료의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전민일보  |  jmib@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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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3  10: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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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하우스 출신의 딸기를 먹으며 생각한다 왜 백미터 늦게 달리기는 없을까 만약 느티나무가 출전한다면 출발선에 슬슬 뿌리를 내리고 서 있다가 한 오백년 뒤 저의 푸른 그림자로 아예 골인 지점을 지워버릴 것이다>
이원규 시인 『속도』 중에서

오늘도 무심코 스마트 폰을 열어보고 수 많은 정보와 속도에 편승하여 하루를 시작한다. 어쩌면 불필요한 정보와 속도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잠시 스마트폰을 덮고 생각해본다.

내가 모르는 사이 속도는 이마를 스쳐 손끝으로 표출되고 있었다. 컴퓨터 모니터에 비친 모습은 숨고르기를 하는 동안 속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그 동안 돌아보면 쉴틈없이 달려온 소방공무원의 삶이였다.

현장에서 흘린 땀방울만큼 생명을 구하고 화재를 진압하고 살갗이 찢어지는 듯한 추위를 견뎌내며 지금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러는동안 소방의 역사는 흐르고 가슴 한 켠에는 먹먹한 아픔의 시간들이 말의 변비가 되어 시원스레 해소되지 않은 채 자리잡고 있음을 느낀다.

이러한 증상은 외상후스트레스 장애(PTSD)로 현장에서 끔찍한 상황의 잔상이 남아 꿈이나 반복되는 생각을 통해 외상의 재경험, 외상과 연관된 상황을 피하려고 하거나 무감각해지는 것, 집중력저하 등 소방대원들이 겪는 정신적 장애이다.

필자 또한 돌이켜보면 장애수준은 미치지 못하나 현재까지 겪었던 현장의 상황이 잔상으로 남아 사건 당시 효율적인 화재진압 및 인명구조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 경험이 쌓이고 훈련과 대응이 몸에 익숙해지는 동안 앞만 보던 신입 소방대원 때의 모습이 열정만으로 전진했던 것이 후회되는 것이다.

이는 가슴에 119가 새겨진 표장을 새긴 대한민국 소방공무원이면 그림자처럼 따라 붙는 감정이다.

이러한 감정적 변화가 심한 경우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이겨내지 못하고 고통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 이에 소방에서는 정신적 상담치료 지원, 견디기 힘든 업무에서 보직변경, 휴식 등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현재 소방전문병원 건립으로 소방공무원의 신체적, 정신적 전문치료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전문적이고 급진적인 치료방법을 제시하고 지원한다고 쉽사리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를 극복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속도의 차이가 있고 생활의 패턴이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1부터 10까지 있어 10을 지원하였다고 10의 효과를 바랄 수만은 없다. 10을 지원하여도 5를 받아들이는 대원과 그 이상을 받아들이는 대원의 속도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들에게 적용되는 시간을 묵묵히 기다려줘야 한다.

화재 현장에서는 2인 1조로 진압활동을 전개한다. 선두에 있는 대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현장에서 흔한 일이다. 앞에 선 대원의 열정과 경험, 그리고 뒤에 선 대원은 앞 선 대원의 목숨과 안전에 대한 약속과 믿음의 고리로 묶여 있다.

그렇지만 PTSD를 겪는 동료의 고통스러운 뒷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또다른 아픔을 가슴에 품는 것으로 손을 내밀기도 쉬운 것이 아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료를 위로하기 위해 ‘잊어라, 힘내라’라는 말로 극복의 속도를 재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언젠가 하얗게 세월의 무게를 견디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아무말 없이 아버지의 허리를 감싸안고 마음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함께 천천히 걷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처럼 PTSD를 겪는 동료의 뒷모습을 바라보게 된다면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 잡아주고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고 버팀목이 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갈 정도의 속도시대에 살고 있지만, 속도를 역행하여 소중한 동료애가 발휘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학수 고창소방서 소방행정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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