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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으로 산다는 것
전민일보  |  jmib@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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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22  09:5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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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본에 다녀왔다. 처음 찾는 그 나라에 비행기가 아닌 배를 타고 갔다. 8인실인 내 숙소에 들어가니 먼저 오신 분이 계신다. “안녕하세요.”라는 내 말에 그가 나를 빤히 바라본다. 일본인이었다. 짐을 풀고 갑판에 나오니 많은 사람들이 바다와 항구를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마주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한국인인가? 하면 일본인이고, 일본인인가? 하면 한국인이다. 저녁 식사 후 클럽을 찾은 사람들도 한국인과 일본인이 반반이었다.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중에 사회자가 내건 경품에 일본 어린이가 당첨 되었다.

축하를 받으며 무대로 나온 귀여운 아이의 모습은 조금 더 어린 시절의 내 조카 모습 그대로였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갑판에 올라오니 비슷하지만 같지 않은 한국과 일본의 풍경이 대비된다. 오전 9시 사카이미나토에 도착해 입국수속을 밟았다. 동해항의 한국 공무원들이 그랬듯이 일본공무원들도 참으로 친절하게 우리를 맞아줬다.

28년 전 런던 하이드파크에서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며 미소와 격려를 보내줬던 일본인 노부부가 떠올랐다. 내게 그분들은 단순한 일본인이 아닌 친절하고 예의바른 지구인이었다. 내가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없을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한국과 일본은 왜 불편한 이웃이 되었을까. 이웃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지난 해 경북 봉화에서 한 귀농인에 의한 총기살상이 있었다. 면사무소 공무원 2명이 살해된 그 자리에 용감한 의인이 없었다면 살인은 그가 목표한 숫자 30을 채웠을지 모른다. 해병대 출신임에 자부심을 가진다는 그에게는 절실한 사명의식이 있었다. 버러지 같은 공무원, 무책임한 파출소장과 마을 이장 그리고 자신의 증언요청을 거부한 건설업자는 물론 이웃이 살해 대상이었다.

그는 자신의 결단이 숭고한 희생(?)이자 적폐청산을 위한 대업이라 당당히 말했다. 분명 그는 ‘알라후 아크바르’를 외치며 성전을 수행하는 세력보다 더욱 선진적(?)이다.

그가 증오하고 척결해야할 대상은 외적도 이교도도 아닌 이웃이었기 때문이다.

그 병든 노인은 한국사회에 커다란 메시지를 남겼다. 이웃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그래서 더욱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자괴감과 상실감이 몰아친다.

봉화의 그 귀농 노인이 보여준 한 편의 비극드라마가 아니어도 숭고한 이 말씀이 현실에서는 너무도 지키기 어려운 가르침이라는 점 때문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이렇게 말한다. “온 인류를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내 곁의 이웃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때로 내 바로 아래 위층 이웃에 대해 느끼는 혐오와 적대감의 가장 큰 연원도 그들이 가깝게 존재하는데 있다. 봉화 그 마을에서 벌어진 참극의 원인도 당사자들이 이웃이었다는데 있다.

그것은 국가 차원에서도 다르지 않다. 일본과 중국이 우리 이웃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들에게 보다 큰 호감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세 나라의 과거사는 그렇다 치고 현재에 대한 해석과 미래에 대한 전망도 제각각이다. 같은 것을 듣고 보지만 세 나라는 여전히 동상이몽(同床異夢)상태에서 산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미래에도 그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데 있다.

이번 여정 중에 들린 곳 중에는 마츠에성도 있었다. 그런데 그 성이 위치한 곳이 시마네현이었다. 차창 밖 현 청사에는 불편한 자막이 흐르고 있었다. “다케시마(竹島)는 역사적으로 일본영토다.”

한국인이 동해라고 부르는 그 바다도 그들은 일본해라고 부르고 있었다.

또 다른 이웃 중국은 어떤가. 중국몽을 부르짖으며 중화주의의 부활을 외치는 그들에게서 편한 이웃의 모습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이웃이면서 불구대천의 원수였던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와 협력이 오늘의 유럽연합을 만들었다.

동북아 3국은 언젠가 유럽연합과 같은 공존과 상생의 길을 갈 수 있을까.

돌아오는 배에 젊은 일본 여성 2명이 탔다. 그들은 일본을 떠나는 뱃전에서 나지막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사요나라”

그들이 한국에서 좋은 추억을 쌓았으면 한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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