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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이 문제일까
전민일보  |  jmib@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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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10  09: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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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미국 대선에서 앨 고어가 조지 부시(아들)에게 대통령 자리를 넘겨줄 때 고어는 고향인 테네시에서 부시에게 패했다. 또한 조지 부시의 동생이 주지사로 있던 플로리다에서는 부정투표의혹까지 있었다.

둘 중 한 곳에서만 승리했어도 대통령 당선인은 앨 고어였다. 깨어진 상식과 피어오르는 음모론의 소재로 이보다 더한 경우가 있을까. 그런데 정말 황당한 것은 고어가 부시보다 더 많은 미국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더 많은 표를 얻고도 선거인단 확보에서 패한 것은 승자독식이라는 미국 선거제도가 낳은 이변이었다.

만일 고어가 플로리다 투표결과에 대한 합리적 의심과 기형적 결과를 초래한 선거제도의 모순을 근거로 불복 논리를 펼쳤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그런데 그것에 선행하는 의문이 있다. 합리적이고 실용적 철학을 대표하는 나라인 미국에서 왜 이런 제도를 만든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각 연방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서다. 보다 큰 목적을 위해 부가적인 희생은 때로 불가피하다는 것이 선거제도에도 반영된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실용을 추구하는 미국인의 철학과도 일치한다. 이미 알고 있듯이 앨 고어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대신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였다. 게임의 룰은 때로 억울함과 불편함을 만들어낸다.

대한민국은 선거에 의해 정부를 교체한다. 그것은 단순히 대통령 한 사람이 바뀌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통령 임기를 함께하며 책임을 같이 할 세력의 교체이기 때문이다. 바로 거기에서 출발하는 전제가 있다. 현행 정당 민주정치 하에서 엽관제는 필요하고 불가피하다.

그런 이유로 적어도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는 임명권자가 바뀌면 새로 신임을 얻어 거취를 결정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대통령과 다른 정치철학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국민의 뜻과도 맞지 않고 책임정치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수의 대상만 달라질 뿐 동일한 하소연이 반복된다. 낙하산이 문제라고? 엽관제는 본질적으로 낙하산 인사다.

우리가 선거로 정부를 선택했다면 그것은 정치영역에 남겨둬야 한다. 거기에 잘못이 있다면 선거로 심판하면 된다.

여기 고대 그리스인이 남겨놓은 기묘한 게임의 룰이 하나 있다. 두 명의 후보자를 놓고 열 명이 투표에 나선다. 그런대 개표는 그중 무작위로 다섯 표만 한다. 이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는 일곱 표를 얻은 사람이 단 세 표를 얻은 사람에게 패할 수 있다. 이처럼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게임의 룰이 있을까?

고대 그리스인이 왜 이런 선거제도를 운영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없다. 다만 유력한 추론이 몇가지 있다.

인생은 우연의 연속이라는 그리스인의 인생관이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패자에 대한 배려라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주목할 만한 견해가 하나 있다. 바로 부정선거를 방지하기 위한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은 민주정치를 구현한 이성을 가진 존재인 동시에 권리남용과 부정투표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존재이기도 했다.

아리스티데스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도편추방제는 종종 악용되었으며 부정투표도 있었다는 것이 역사적 사서와 유물을 통해 증명되었다. 그리스인이 기묘한 선거의 룰을 만든 것도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다.

실제로 열 명이 투표하고 무작위로 다섯 표만 개표하게 되면 열 표를 개표할 때 필요한 여섯 표보다 두 표 많은 여덟 표를 얻어야 승리를 확신할 수 있다. 사실상 매수나 부정에 의한 투표가 어려워진다.

로컬푸드를 성공시킨 완주 용진농협 관계자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처음 일본에 가서 많이 배워왔는데 이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습니다. 이제 그들이 와서 우리 모습을 봐야할 겁니다.” 그 당당한 자신감. 한때 전가의 보도로 인용되었던 외국 사례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게임의 룰이 존재한다.

게임의 룰조차 지구상 그 어느 곳에 가도 부족함이 없다. 문제는 그것을 지키고 존중하는 것이다.

게임의 룰을 존중하는 것은 그것이 공정해서가 아니라 룰 자체이기 때문이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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