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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건, 다른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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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건, 다른 시각
  • 전민일보
  • 승인 2019.03.13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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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조선에서 전쟁이 발발했다. 그런데 동북아 국제전인 그 사건에 대한 관계국의 기억은 조금씩 다르다. 명칭부터 조선은 임진왜란(壬辰倭亂), 일본은 분로쿠·케이쵸의 역, 그리고 중국은 항왜원조(抗倭援朝)로 그 전쟁을 정의한다. 전쟁의 조짐은 이미 오랜 전 예견되어 있었다.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공공연하게 전쟁을 얘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은 물론 명나라 조정에서도 이미 예견했던 전쟁이었다. 당시 일본은 전쟁을 공언하며 협박했고 조선은 명과 일본 사이에서 전전긍긍했으며 명은 조선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가장 어이없었던 것은 역시 조선이었다. 일본은, 명나라를 치려하니 조선에게 길을 빌려달라고 했고 명은, 그런 조선을 향해 의심과 함께 노골적인 냉대를 보냈기 때문이다.

그나마 명 만력제(萬曆帝)가 조선에 보인 호의가 위안인 상황이었다. 명 신종(神宗)은 중국 역사상 가장 무능한 황제로 명나라 멸망의 원흉으로까지 얘기되는 사람이지만 조선에는 호의적이었다. 정사에 관심이 없던 그가 거의 유일하게 관심을 보인 것도 조선에 대한 파병문제였다.

그런데 여기서도 분명히 할 부분이 있다. 지금까지도 중국에서는 조선에 대한 파병을 대단한 선심으로 얘기하지만 그것은 정확한 분석이 아니다. 애초 그 전쟁은 일본과 명나라 사이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직접 명나라를 치지 않고 조선을 통해 가려했던 것은 당시 선박 수준이 장거리 항해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조선이 극단적으로 일본과 연합해 명나라를 치려했다면 상황이 어떠했겠는가. 명나라가 조선을 도왔다고 생색을 낼 일이 아니라 조선이 자신들을 대신해 방패가 되어준 것에 대해 감사해야 마땅한 일이었던 것이다.

재조지은(再造之恩)은 분명 조선인들의 과례(過禮)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한국인이 바라본 동아시아 3국 전쟁에 관한 시점이다. 일본과 중국은 여전히 그들의 논리를 가지고 있다.

같은 사건에 대한 다른 시각이 어찌 이것뿐이겠는가. 어쩌면 우리는 모든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지고 살아간다. 남과 북 모두 한민족의 통일을 염원한다. 그런데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은 너무도 다르다.

미국이 대만을 버리고 중국을 선택했을 당시 집권당은 공화당이었다. 양당제도가 확립된 미국에서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보수정당이지만 상대적으로 말한다면 민주당이 좀 더 진보 쪽에 가깝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 미·중 수교가 시대적 대세였다고 해도 공화당의 닉슨 행정부에서 추진하는 것이 민주당 정권에서보다 미국 내 비판적 여론을 잠재우는데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북한 관계는 어떠한가. 남북한 관계는 남측에 상대적 진보 정부가 집권한 상태에서 발전해왔다.

북측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과 대화나 협상을 하는데 있어 남측 진보 정부가 분명 수월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엔 치명적 상처가 내재해 있다. 이른바 남남 갈등과 더불어 정책의 안정성과 지속성에 대한 의문이 꼬리표로 자리하게 된다는 점이다.

강경파는 북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남측이 북한 강경파에 대해 도발 명분을 주는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하듯이 북한에게도 동일한 의무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서로의 접점을 찾아가는 여로가 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북측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남측 보수 세력에 대한 외면과 비난이 아니라 다가서려는 노력이다. 물론 그와 동일하게 남측 보수 세력의 열린 자세도 필요하다.

박왕자씨 피격사건,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과 같은 상황에 대해 남측 보수 세력이 움직일 수 있는 명분을 주는 것은 향후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재개에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남측보수 세력과 북측 지도부가 서로의 시각에 대한 접점을 찾지 못하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가는 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절망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중국은 6·25 당시 항미원조(抗米援朝)로 조선을 구했다고 자랑하지만 내게 그들은 한국의 통일을 좌절시킨 세력일 뿐이다. 같은 사건에 대한 다른 시각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다른 시각에 대한 무조건적인 의심이다. 남과 북의 불신이 그렇다.

그것은 임진왜란에 대한 3국의 정의가 다른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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