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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손에 움켜 쥔 ‘독립의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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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손에 움켜 쥔 ‘독립의 불씨’
  • 전민일보
  • 승인 2019.03.08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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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 오수리 오수초등학교. 100여명 남짓한 학생. 교훈은 ‘사랑과 웃음 속에 꿈을 키우는 오수 어린이’.

100년 전, 개교 한 지 2년밖에 안된 이 조그마한 시골학교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초등학생 만세운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고사리 손에 태극기를 움켜쥐고 나라 잃은 설움과 울분을 토해낸 것이다.

오수는 사실 의견(義犬)으로 더 유명하다. 술에 취해 잠든 주인에게 산불이 옮겨 붙지 않게 하기 위해 온 몸에 물을 적셔 뒹굴어 불길을 막아 주인을 살리고, 자신은 목숨을 다한 의견이야기다.

잠에서 깬 주인은 개의 주검을 묻어주고 그곳에 지팡이를 꽂아 두었는데 지팡이에서 싹이 나고 큰 나무로 자라났다고 해서 훗날 개 오(獒)와 나무 수(樹)를 합해 오수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오수는 반려동물의 충직함 그 이상이 있다. 바로 3·1운동 10대 의거지로 꼽힐 정도로 독립운동이 치열했던 충절(忠節)이 있다.

1919년 3월 10일, 당시 오수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 교사였던 이광수 선생을 주축으로 한 학생들이 오수 시가지 및 오수역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는데, 초등학생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은밀하고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져 일본인 교장과 순사들도 눈치를 채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초등학생들의 이런 기개와 용기는 어른들과 여타 지역민들에게도 큰 충격과 자극으로 다가갔다. 이를 도화선으로 3월 15일에는 장수와 남원 등 약 1,000여명이 오수주재소 습격과 만세운동을 벌였고, 4월 7일까지 계속된 만세운동기간 동안 많게는 2,000여명까지 운집했다고 하니, 작은 시골마을이었음을 고려하면, 그 열기와 참여가 얼마나 대단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 날 오수역, 그 곳에서 초등학생들은 만세를 외쳤다. 열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보고도 믿기 어려운 광경을 목도하고, 어린 학생들이 목놓아 부르는 ‘대한독립만세’를 실어 날랐을 것이다. 벅찬 감동은 철길을 따라 기적소리를 내며 전국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때 묻지 않은 어린아이들의 순수함이 만들어 낸 더 크고 강한 ‘독립의 불씨’가 되었다.

그로부터 1세기가 지났다. ‘기억되지 않은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한다. 나라 잃은 울분과 설움이 얼마나 깊었으면 초등학생들까지 들고 일어났을까? 나라가 있어야 민족이 있고, 민족이 있어야 우리가 있지 않은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신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 그것이 우리시대의 가장 큰 애국이 아닐까 생각된다. 지운다고 흔적까지 지울 수는 없다. 비록 아픈 역사지만 소중히 간직해서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경계로 삼아야 한다.

김석기 전북동부보훈지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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