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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의 향기’가 느껴지는 전주한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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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의 향기’가 느껴지는 전주한옥마을
  • 전민일보
  • 승인 2019.02.21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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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굽이굽이 걷다 보면 마치 시간이 멈춘듯 하다. 9만평의 토지 안에 700여 채의 고풍스러운 기와집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는 곳. 바로 ‘전주한옥마을’이다.

전주의 대표적 명소로 한 해 약 500여만 명이 이곳을 찾는다. 경기전, 전동성당 등 풍부한 문화자산에 다양한 볼거리가 많아 바쁜 일상을 뒤로하고 가슴 한켠에 자리하고 있는 옛것의 소중함과 느림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곳 한옥마을이 형성된 바탕에 항일정신이 깔려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마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전주한옥마을은 전주에 몰려든 일본인이 성곽을 허물고 그 자리에 도로와 건물을 세우자 그에 대항하여 우리 것을 지키려는 마음들이 하나 둘씩 모여 만들어졌다.

1930년대 일제의 쌀 수탈이 한창 진행되던 때, 일제가 호남지역의 쌀을 좀 더 수월하게 수탈해 갈 목적으로 ‘전군가도(全郡街道)’를 만들고, 전주성곽을 허물어 전주 4대문 안에 일본가옥을 짓고 상권을 확대하여 세를 불리기 시작하자, 이에 대항하여 선비들이 하나 둘 모여 기와지붕을 얹고 조선시대 3대 시장으로 통하던 전주남부시장 상인들도 약방과 양조장 등을 짓기 시작하여 형성된 한옥촌이 지금의 한옥마을이다.

일본인 거주지 확장은 결국, 한옥에 가로막혔다. 우리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지키려는 공간, 즉 민족혼이 서린 한옥으로 항일정신을 드러낸 것이다. 한옥마을에는 선비들의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한 저항의 흔적 또한 곳곳에 서려 있다.

전주천을 따라 전주에 들어오다 보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승암산 기슭의 절벽을 깎아 세운 한벽당(寒碧堂)이다.

일제가 민족정기를 끊기 위해 전라선 철로개설을 구실로 한벽당을 헐어버리려고 할 때 이에 강력히 항거하여 지켜낸 사람이 ‘호남 삼재(三齋)’ 중 한명인 금재(금齋) 최병심(崔秉心, 1874˜1957) 선생이다.

금재는 한벽당을 세운 조선 초기 문신 최담의 후손으로 일제가 식민지배 강화로 우리의 정신과 문화적 유산을 말살하려 하자, 이를 계승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옥류정사(玉流精舍)’라는 서당을 짓고 강학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단식으로 일제에 항거하고 토역선참(討逆先斬)의 격문을 작성하여 곳곳에 붙였으며, 1912년에는 호남창의대장 이석용 의병장이 독립 밀맹단을 조직하고 각 지역을 분담할 때 전주지방을 맡아 의병활동을 지원하였다.

전주향교 뒷자락에는 남안재(南安齋)가 있다. 남안재는 민족문화를 보존하고 후학을 양성하여 항일의지를 도모하였던 고재(顧齋) 이병은(李炳殷, 1877˜1960) 선생이 완주군 구이에서 강학을 하던 곳을 통째로 옮겨온 것으로 조선유학의 불씨를 되살리고 전주향교를 지켜낸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역시 호남삼재 중 한명인 이병은 선생은 일제에 저항해 단발령을 거부하고, 조희제(趙熙濟, 1873~1939) 선생이 독립투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염재야록(念齋野錄)’을 저술, 발간할 때 발문을 작성한 것 때문에 일제에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염재야록’서문은 금재 최병심 선생이 작성하였다.

일제강점기 남안재는 민족문화를 보존하고 항일의지를 다지는 장소였고, 해방 이후에는 향교재건을 위한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남안재 아래로 내려와 골목길로 접어들면 전주동헌 옆 장현식 선생 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일송(一松) 장현식(張鉉植, 1896~1950) 선생은 1919년 독립운동 비밀결사 단체인 대동단이 창단되자 군영 자금을 제공하였고, 대동신문 재정운영을 맡다 체포되어 투옥되기도 하였다.

상해 임시정부 시절에는 독립운동자금 수만원을 아낌없이 기부해 조국의 독립을 지원하였다. 그의 고택은 2009년 김제 금구면에서 전주한옥마을로 이축되어 독립운동가의 고택에서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배우는 매우 특별한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처럼 전주한옥마을 구석구석에는 우리 조상들의 혼과 얼이 가득하다.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 3·1절과 임시정부수립기념일에는 전주한옥마을을 찾아 고즈넉한 옛길을 거닐며 선비들의 풍류와 기개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요? 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평생을 헌신한 독립운동가의 흔적을 따라가 ‘보훈(報勳)의 향기’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요?

김석기 전북동부보훈지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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