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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부시 시니어를 생각한다
전민일보  |  jmib@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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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21  09:2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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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부시 시니어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사람이 참 양반 (a decent man) 이야”하는 생각이다.

그는 젊었을 때 2차대전 참전 그리고 잠시 텍사스에서 사업한 이후로 줄곧 정치와 공직봉사로 삶의 대부분을 보냈다.

1998년초 외환위기의 와중에 라이스대학교 경제학 교수로 있던 필자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의 요청으로 휴스턴에 있는 부시 전 대통령을 방문했다.

당시 민주당 클린턴 정부의 한국에 대한 자금지원을 공화당 일부에서 반대하고 있었고, 특히 중진상원의원 로치 페어클로스 등이 적극적으로 반대입장을 개진하며 지원에 제동을 걸고 있었다.

미국 조세부담자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이었지만, 미국의 반도체 대기업인 마이크론이 하이닉스 등 한국 대기업들에 대한 구제금융에 반대하는 로비도 그 배경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필자에게 “정치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 (조지 부시 주니어와 젭 부시) 입장과 다를 수 있으니 공개적으로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뒤에서 분위기를 돌리도록 노력할 테니 공화당 일부의 반대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는 한국이 외환위기 해결 과정에서 치뤄야 될 금융구조조정의 정치적 어려움에 대해서 주의를 환기시키며, 본인이 재선에 실패한 것도 금융위기 상황에서 저축대부조합들을 정리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그가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는 공약을 번복한 것이 정치적으로 힘을 잃게 된 큰 원인이었는데, 이 맥락에서 그 말을 한 것이다.

그는 대통령선거 기간 중에 “내 입술(lips)을 읽어요. 세금 올리지 않겠습니다”고 했는데, 대통령이 된 뒤 조깅 중에 기자가 따라 붙으며 이에 대해 묻자 “내 엉덩이(hips)를 읽어요”해서 구설수에 올랐다.

그는 공약번복으로 정치적으로 손해 봤지만 국가적으로 해야할 일을 했다. 미국 역사상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 중 가장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 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선거기간중 유권자들을 사로잡은 공약들을 무리해서라도 실행하려고 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대조되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그가 공약대로 밀고 나가는게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민주정치에서 정치인이 정치적으로 성공하려면 다수 유권자의 의사에 따라야 한다.

그렇다고 항상 다수 유권자가 하자는 대로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유권자가 생각하는 방향이 대체로 옳지만 항상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유권자가 원하는 것과 본인의 생각이 다를 때에는 본인의 생각대로 일을 하고 자리에서 내려올 수 있는 결기가 있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을 생각해본다. 그는 야당하며 소수자를 대변하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어서는 국가이익을 우선하고, 원래 자신이 가진 생각과 다른 결정을 내려야할 때에는, 고뇌하 면서도 지지자들에게 비난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지지세력의 아바타가 아니었다. 장사꾼도 아니었다. 철학이 있고 국가관이 있는 정치인이었다. 노무현 정부와 대비해 보면, 현정부는 선거 때 사용했던 슬로건들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는 게 아닌지…. 관성적인 행보가 보이고, 책임있게 국가를 경영하는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잘못된 경제정 책으로 많은 실직자들, 자영업자들, 중소기업들이 고통받고 있어도 꿈쩍하지 않는다. 노무현의 고뇌가 보이지 않는다.

조지 부시를 경제정책만 가지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냉전체제가 막을 내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독일통일, 그리고 동구권과 소련의 공산주의체제 붕괴를 잘 관리했다. 사막의 폭풍 작전으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막아내면서도 사담 후세인을 몰아내지는 않았다.

중동의 세력균형을 유지한 것이다. 뒤에 조지 부시 주니어와 네오콘들이 사담 후세인을 축출한 뒤 이라크와 그 주변국들은 혼돈에 빠져 지금도 많은 중동발 난민들이 유랑하고 있다.

2000년에 조지 부시 시니어가 라이스대학교 졸업식 연설을 위해 왔을 때 필자를 만나자 “아, 아시아금융위기 때 김대중 대통령 밀사로 왔었지”하며 친근감을 표시했던 기억이 난다.

세계를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드는데 공헌한 그의 공직봉사의 삶을 흐뭇한 마음으로 경하한다.

채수찬 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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