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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는 양치기 소년의 전유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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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는 양치기 소년의 전유물이 아니다
  • 전민일보
  • 승인 2018.12.05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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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기 소년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있다. 그것이 여전히 우화로서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근원이다. 다만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은 재미를 위한 것이었을 뿐 애초 불순한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것이 가짜뉴스라는 사실과 그로 인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은 변할 수 없다. 진실을 모호하게 만들고 신뢰를 파괴함으로써 공동체의 존립자체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가짜뉴스의 대부분은 양치기 소년의 순박한 의도와는 달리 처음부터 악의적인 목적을 가진 경우가 많다. 매체의 다양화와 정보의 실시간 공유를 통해 지구촌 단위로 이뤄지는 뉴스의 파급력은 가짜뉴스를 더 이상 양치기소년의 거짓말 정도로 치부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일까. 가짜뉴스를 근절하겠다는 결의와 다양한 규제책이 얘기되고 있다. 그런데 가짜뉴스는 왜 나오는 것일까. 그리고 가짜뉴스를 검증하고 심판하는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하는가. 가짜뉴스의 양상은 역사적으로 다양하다. 유언비어가 대표적이다.

이징옥이나 홍경래는 자신들의 거병에 그것을 활용했다. 이인좌가 군사를 일으킬 때도 명분은 영조가 숙종의 아들이 아니라는 뉴스를 통해서였다. 또한 비스마르크가 프랑스로 하여금 먼저 선전포고를 하게 만든 것도 유명한 엠스 전보 사건으로 만들어진 가짜뉴스를 통해서였다. 문제는 가짜뉴스 중에는 우리가 지금도 진실이라 믿고 있으며 그 자체가 역사적 심판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경우도 적잖다는 것이다.

이긍익은 [연려실기술]에서 신숙주와 그의 부인에 대해 이런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의 부인은 영상 윤자운의 누이동생이었다. 공이 세종조에서 팔학사에 참여하여 더욱이 성삼문과 가장 친밀하였다. 병자의 난에 삼문 등의 옥사가 일어났는데 그날 밤 공이 집에 돌아오니 중문이 환히 열려 있고 윤부인은 보이지 않았다. 공이 방을 살펴보니 부인이 홀로 다락 위에 올라가서 두어 자 되는 베를 가지고 들보 밑에 앉아 있었다. 그 까닭을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당신이 평일에 성학사 등과 서로 형제와 다름없이 사이가 좋았습니다. 오늘 성학사 등의 옥사가 있었다 하니 당신도 반드시 그들과 함께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통지가 있기를 기다려서 자결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당신이 살아서 돌아오셨습니다.’하니 그가 무연히 부끄러워하며 몸 둘 바를 몰랐다.”

지금까지도 적잖은 사람들이 신숙주를 비판할 때 인용하는 구절이다. 그런데 신숙주의 부인이 죽은 것은 사육신 사건이 있던 해 정월이고 사육신 사건은 그해 4월에 있었다. 가짜뉴스다.

또 하나의 사례다. 이준 열사는 1907년 7월 14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죽었다. 이위종, 이상설과 함께 만국 평화회의에서 대한제국의 독립을 호소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순국한 것이다. 그런데 그의 순국 소식을 전한 대한매일신보는 이준이 자결해 만국 사신 앞에서 피를 뿌렸다고 보도했다. 또한 황성신문도 이준이 할복자살했다고 당시 조선 민중에게 전했다.

이준 열사의 우국충정과 순국은 의심할 수 없는 불멸의 기록이다. 그럼에도 대한매일신보와 황성신문의 보도는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준 열사는 할복자살하지 않았다.

신숙주 부인의 죽음과 이준 열사의 순국에 대한 기록은 그 자체로 보면 분명 가짜뉴스다. 그럼에도 우리는 [연려실기술]이나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의 기록에 대해 비판만 할 수 없다. 그러한 기록이 왜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함께하기 때문이다. 거기엔 그것을 검증하는 후대에게 선대가 전하고자하는 울림과 열망이 담겨있다.

어떠한 사실이 악의적이고 명백한 허위가 아니라면 제 삼자가 그것의 진위를 판명해 규제하고 처벌하겠다고 하는 사고는 매우 위험하다. 그러한 판단근거와 심판의 주체를 신(神) 외의 대상에서 상정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합리적 의심이 때로 거짓으로 판명될 수 있다.

그렇다고 그것을 거짓뉴스의 프레임에 가둔다면 그 자체가 대단히 전제적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이준 열사의 순국이 할복자살이 아니라고 해서 가짜뉴스로 처벌하겠다고 한다면 나 역시 감옥에 가야할 일이 많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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