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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역설
전민일보  |  jmib@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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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04  10: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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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시베리아 지역에서 기온이 영하 50도까지 떨어지면서 중앙난방을 공급하는 보일러가 터지는 사고가 있었다. 기온이 떨어지면 보일러 압력을 낮추도록 되어 있었지만 압력이 상승할 때까지 방치되어 있었다. 보일러 폭발로 창문은 다 깨지다시피 했고, 그 틈으로 찬 공기가 유입되면서 나머지 보일러들도 가동되지 않았다.

보일러 폭발은 난방에서 전기공급 문제로까지 이어졌다. 전기공급이 난방과 결합된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사고는 재앙에 가까웠다. 극심한 한파에 주민들은 무방비로 생존의 위협을 느낄 지경이었다. 행정당국의 대처도 문제였다. 위기상황을 제대로 전파하고 신속한 수습에 나서야 했지만 공식적인 주민 경고는 없었다.

약 20년 전 있었던 이 사건은 도시의 인프라를 국가가 소유하고 통제 운영하던 소련연방의 씁쓸한 유산이라는 점에서 적지 않은 정치적 함의가 담겨 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먼 나라의 일을 다시 한 번 상기하는 까닭은 정치체제의 같고 다름을 떠나서 도시라는 공간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취약할 수 있다는 점을 생생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외형적으로는 도시가 체계화된 시스템에 따라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시스템이라는 것이 실상은 굉장히 허약한 것일 수 있다는, 도시의 역설 말이다.

오늘날의 도시는 수천 년 간 인류가 발전시켜온 가장 진화된 형태의 삶의 공간이다. 도시에는 한 사회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제반 기능이 집중되어 있고, 도시를 구성하는 유무형의 요소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게다가 현대의 도시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스마트 시티와 같은 첨단 도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바꿔 말하면 도시 기능의 지속적인 고도화는 이미 정해진 수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며, 장차 십년 또는 이십년 후 도시에서의 삶은 한 번의 터치나 음성명령만으로도 어지간한 문제 해결이 가능한, 편의와 효용이 극대화된 삶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체계화된 기능의 밀집과 고도화가 진행될수록 도시를 작동시키는 시스템의 취약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얼마 전 KT아현지사의 화재사건이 그랬다.

지하 통신구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이 사건은 시민들이 쓰는 스마트폰은 물론 공공기관의 통신망 장애를 초래했고 각종 금융결제시스템 작동도 중단됐다. 119 연결이 안 돼 위급한 환자가 골든타임을 놓치고 생명을 잃는 안타까운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사고발생 이후에는 공공성보다 수익성을 좇는 기업행태가 근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대규모 인력 감축과 이에 따른 관리부실로 야기된 인재였다는 것이다.

KT화재사고에서 20년 전 멀고 먼 시베리아 동토에서 있었던 보일러 폭발사고의 기시감을 느낀다면 과장일까. 어떤 연유에서건 도시를 작동시키는 시스템은 잠재적인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고, 이 불안정성은 기술적인 문제는 물론 그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나 정치체제 등 여러 원인에 의해 가시화될 수 있다는 점을 되새겨봄직 하다.

효율과 편의, 속도가 선사해주는 도시의 안락함에만 안주하게 된다면 그 안에 내재된 도시의 취약성은 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위협하는 재앙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는, 도시의 불안한 역설을 현실로 소환시키는 꼴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한완수 전라북도의회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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