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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을 조롱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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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을 조롱하는 사회
  • 전민일보
  • 승인 2018.10.24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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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려던 생명들이 히말라야에서 삶을 다했다.

추모하는 모습 한 편에선 이런 저런 얘기도 들려온다. ‘왜 굳이 위험한 산행을 해 많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나’, ‘자신들이 선택한 무모함에 대한 대가’, 또 어떤 이는 무슬림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겠다고 나섰다가 인질이 된 샘물교회 교인들과 비교하기도 한다.

살펴보자. 히말라야에 영혼을 두고 온 그들은 적잖은 사람이 무모하다 말한 그 산행에 굳이 왜 나선것일까.

그 의문은 아마도 한국인의 오랜 믿음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공자가 증자에게 전한 오래되고 친숙한 경구로부터다.

‘신체발부수지부모 불감훼상효지시야(身體髮膚受之父母不敢毁傷孝之始也)’ 그런 점에서라면 히말라야 원정대의 사고는 그 자체만으로 대단한 불효가 된다. 한국사에서 모험이 대단히 예외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관련해 [한서(漢書) 왕존전(王尊傳)]에는 이런 얘기가 나온다. 왕존이 익주 자사(益州刺史)가 되어 부임할때다. 험하기로 이름난 공래의 구절판(九折坂)이라는 곳에 이르렀다. 전임 자사 왕양(王陽)이 그곳에서 험난한 것이 무서워 감히 앞으로 나가지 못한 일이 있다는 얘길 들었다. 이에 왕존은 마부에게 이렇게 말했다.

“말을 몰아라. 왕양은 효자이고 왕존은 충신이다.” 이때 왕존이 왕양에 대해 효자라고 말한 것은, 부모가 생존해 있는 왕양이 모험을 하다가 행여 몸에 불행한 일이 생길 경우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이기 때문에 효성에서 모험을 꺼려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에겐 왕양의 효성에 결코 부족하지 않은 여러 얘기가 있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宣祖)의 곁을 떠난 수많은 신료들이 내세운 명분은 부모봉양이었다.

조선에서 효(孝)는 충(忠)에 선행하는 절대가치였다.

한국인이 효에 충실하기 위해서 모험에 나서지 않은 것이라면 그것은 역설적이다. 효를 위한 안정이 공동체를 정체하게 만들고 그 여파는 구성원 개인에게 귀속되었기 때문이다. 부모 곁에 안주해 효를 실천하는 것이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있겠는가. 문제는 사회 구성원 전체의 그러한 가치관이 다른 지역과 언어 그리고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에 대한 원천적 무관심을 정당화하는 도그마가 되었다는 것이다.

조선에서 13년을 살다 일본으로 탈출해 귀국한 헨드릭 하멜은 혼자 탈출한 것이 아니다. 처음 탈출한 8명과 함께 이듬해 남은 일행도 일본을 통해 귀국길에 오른다. 여기서 역사는 우리에게 묻는다. 단순히 하멜 한 명도 아니고 불과 수개월이나 수년간 머문것도 아니다. 수 십 명의 네덜란드인이 무려 13년을 조선에 머물다 갔다.

상식적이라면 그들의 언어와 문화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세상에 대한 동경을 가진 조선인이 소수일지라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발전적 실천으로 나타나야한다.

바로 모험이다.

그것이 밀항이 될 수도 있고 하멜 일행과의 정신적 교감에 의한 동행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오늘 우리의 기준이지만 적어도 모험을 정당화할 수 있는 용기와 실천을 당시 조선인에게서 발견하지 못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수많은 일본인이 밀항선에 올랐다. 그중엔 이토 히로부미도 있다. 그들은 낯선 나라, 낯선 사람 그리고 낯선 문화를 통해 일본을 객관화하고 자신들의 미래를 설계했다.

밀항선에 올랐던 사람들 중에는 폭풍을 만나 바다에 수장된 사람도 있고 질병에 의해 생을 마감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한 밀항을 택한 모든 사람이 일본의 발전에 기여했는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분명한 것은 한국인 누구도 그런 무모한 행동에 나서지 않았고 그로인해 너무도 당연히 아무런 희생도 없었다. 모험이 없는 사회, 바로 조선의 모습이다.

아문센과 스콧이 남극점에 다다르기까지 감수한 그 고난과 비극적 죽음은 조선인들에겐 비난과 조소의 대상이었을지 모른다.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에베레스트에 첫발을 내딛던 순간이 인류에게 가져온 그 어떤 물질적 보상이 있었던가. 모험을 조롱하는 사회에는 희생이 없다. 더불어 도약도 사라진다.

그래서 나는 모험을 떠나 돌아오지 못한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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