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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사고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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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21  10: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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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교사(反面敎師)란 말에서 반면(反面)은 뒷면, 또는 부정적인 면이나 소극적인 면을 말하고, 교사(敎師)란 스승을 말하니, 반면교사(反面敎師)란 다른 사람의 잘못된 일과 실패를 나의 스승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이 말은 중국 모택동(毛澤東1893~1976)이 전근대적인 문화와 자본주의를 타파하고 사회주의를 실천하자는 이른바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1966~1976)때 처음 사용한 것으로 전해지는 데, 부정적인 것을 보고 긍정적으로 개선하자는 말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광해군의 여인이라 불리는 궁녀 ‘김개시’는 역사 속 비선실세의 주역이기도 했다. ‘개시(介屎)’는 ‘끼일 개(介)’, ‘똥 시(屎)’로 한글로 풀이하면 ‘개똥’이가 된다.

궁녀들의 신분은 대부분 천민, 노비 출신들이고, 이 여성들에게 오래 살라는 의미로 ‘개똥이’라는 아명(兒名)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는데 ‘개똥이’를 한자(漢字)로 표기하면 ‘개시(介屎)’가 된다.

김개시(金介屎)는 광해군이 감기를 앓으면 밤새 곁을 지킬 정도로 지극정성으로 모셨고, 문서처리에도 능하였으며 영특하였고 광해군에 대한 충성심 또한 대단했었다고 한다. 광해군은 임금에 오르고 나서 김개시를 임금이나 왕비 곁에서 시중을 드는 지밀나인(至密內人)의 자리로 옮기게 했다가 제조상궁(提調尙宮)으로 삼았다.

제조상궁이 된 김개시는 광해군의 총애와 신임을 등에 업고 매관매직(賣官賣職)을 일삼으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면서 인사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양반들에게 인사 청탁을 받고 고위 관리부터 말단관리들의 인사까지 모두 관여했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뇌물(賂物)을 받아 사리사욕을 챙기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광해군이 세자 시절부터 위협을 받았던 인목대비(仁穆大妃1584~1632)를 제거하기 위해 1613년에는 인목대비와 그 아버지 김제남(金悌男 1562~1613) 등이 광해군과 세자를 죽이고 인목대비(仁穆大妃)의 아들 영창대군을 임금으로 삼으려 모의했다는 사건을 조작하여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지지하는 소북파(小北派)를 모조리 몰아냈다. 이를 ‘계축옥사(癸丑獄事)’라 하는데 이 일로 김제남은 사약(賜藥)을 받고 영창대군은 강화도로 유배를 당했다. 유배생활중인 영창대군을 제거하기 위해 작은 골방에 가두어 놓고 아궁이에 불을 계속 지펴대니 펄펄 끓는 골방에서 질식(窒息)하여 죽게 된다. 1614년 그의 나이는 겨우 여덟 살이었다. 그리고 인목대비는 죽일 수 없었기 때문에 서궁(西宮)에 가둔 뒤 유폐(幽閉)시켰는데 1618년부터 5년 동안 서궁에 유폐되었다가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출되자 복위되었다.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두르던 김개시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광해군의 이복동생인 정원군(定遠君)의 아들 능양군(綾陽君)과 서인(西人)들은 광해군과 대북세력(大北勢力)을 몰아낼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1618년 인목대비의 유폐를 계기로 반정을 도모하기로 하고 세력을 규합하였다. 광해군 즉위 이후 권력의 중심에서 소외된 서인(西人)과 남인(南人)은 광해군을 끌어내리고 능양군을 왕으로 세우기 위해 반정을 계획했던 것이다. 반정세력이 왕을 끌어내리려 한다는 소문이 궁궐 안에 퍼졌지만 이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김개시는 반정의 주동자였던 김자점(金自點1588~1651)에게 뇌물을 받고 반정 후에 자신의 안위와 권력유지를 조건으로 반정을 묵인해주기로 했다.

당시 광해군에게 수많은 상소가 올라왔었지만 김개시가 광해군 곁에서 눈과 귀를 멀게 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김개시는 광해군의 최 측근에서 역모 주모자로 거론된 김자점의 충성스런 신하로 변절해 있었다. 김개시는 광해군에게 역모를 꾸밀 리 없다고 보고했고 광해군은 김개시의 말만 믿고 상소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무능하게 대처하던 광해군은 반정군이 창덕궁 안에 들어온 뒤에야 피신하게 되지만 바로 체포될 수밖에 없었고 왕위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광해군을 폐출시킨 능양군(綾陽君)은 조선시대 16대 임금 인조(재위 1623∼1649)가 되었다. 이후 18년 동안 강화도와 제주도 등지에서 유배생활을 하게 되었다. 광해군의 몰락으로 김개시도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광해군을 반면교사로 삼았어야 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너무 신용하지 말고 가끔은 그 들의 본심을 읽을 줄 알았어야만 했다. 광해군은 김개시가 그렇게 까지 할 줄 몰랐을 것이고 박근혜 전 대통령 또한 최순실이 그렇게 까지 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서제막급이 아닐 수 없다.

서제막급이란 말은 배꼽을 물려고 하여도 입이 닿지 않는다는 뜻으로, 일이 그릇된 뒤에는 후회하여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비유한 말인데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장공6년조(莊公六年條)>에 나오는 말이다.

일반인이건, 정치인이건, 기업인이건 무탈(無頉)하게 잘 나가고 있을 때 TV나 신문지상을 통해 매일 보도되는 사건사고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서제막급(噬臍莫及)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김홍광 대한노인회 전북연합회 부설 노인지도자 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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