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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가 최선을 의미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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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가 최선을 의미하진 않는다
  • 전민일보
  • 승인 2018.09.07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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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 갔을 때다. 그곳의 수려한 경관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비단으로 수를 놓은 듯이 아름다운 강과 산’을 뜻하는 금수강산(錦繡江山)이란 말을 대한민국에 국한시킬 수는 없겠구나.

그 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투명하면서도 은은한 에메랄드 빛 물색이었다. 그곳을 유영하는 커다란 물고기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그런데 그곳의 물과 뱀사골 계곡을 흐르는 물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에 대한 설명의 한 부분을 얘기한다면 그것은 비옥함과 척박함의 차이에 있다.

고대 로마인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포로 로마노 유적을 보면 이런 의문을 가지게 된다. 왜 우리에겐 그런 유적이 남아있지 않을까. 그 이유 역시 플리트비체와 뱀사골 계곡을 흐르는 물의 차이와 다르지 않다.

유럽인들이 석조 건물을 만들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에 적절한 원재료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대리석이다.

그에 반해 한반도를 구성하는 주요 암석은 화강암이다. 대리석과 화강암의 차이는 건축 재료만의 차이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물과 토양의 근본을 구성하는 주요 인자이기도하기 때문이다.

플리트비체에 있는 물과 뱀사골 계곡을 흐르는 물빛깔 차이만큼이나 토양도 다르다.

한국 토양은 상대적으로 척박하다. 그것은 토양이 함유하고 있는 유기물 함량에서부터 많은 차이가 있다.

한국이 최고가 아닌 것은 자연경관이나 토양의 비옥함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외국과 스포츠 경기가 있을 때면 간혹 이런 말이 들려온다.

‘한국의 매운 고추 맛을 보여줘라.’ 그런데 청양고추를 심심하게 할 만큼 매운 고추가 세계엔 넘쳐난다.

이제 최고와 그렇지 못한 한국 상황의 이면을 살펴보자. 플리트비체를 흐르는 물빛이 에메랄드 빛을 나타내는 이유는 석회 때문이다.

결정질의 석회암이 바로 대리석이다. 그런데 아름답고 귀중한 건축 재료가 되는 그것이 유럽인들로 하여금 마음 놓고 물을 마실 수 없게 만들었다. 유럽의 거의 모든 강물이나 지하수는 석회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에 반해 화강암을 모암으로 가지고 있는 한국토양은 한국인에겐 마실 물의 축복을 선사했다.

특별한 오염원이 없다면 한국인은 거의 모든 강물과 지하수를 마음 놓고 마실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청양고추가 세계 최고 매운 맛이 아니라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을까.

국가나 개인이 최고가 되고자 하는 바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자리는 최고가 아닌 영역에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이야말로 역사와 개인을 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감자를 재배하기에 너무도 열악한 한국 상황이 감자 육종과 재배기술 전반에 걸쳐 발전의 원동력이 된 것도 그래서인지 모른다.

자녀가 공부에서 최고가 아니라고 실망한다. 공부에서 최고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또 하나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한 사람의 전체적인 역량을 평가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플리트비체에 있는 물을 보면서 뱀사골의 물빛을 탓하는 것이 될지 모른다. 아니, 청양고추에게 ‘넌 왜 더 맵지 않지.’라며 타박하는 것일지도.

이곡의 문집인 [가정집(稼亭集)]에 나오는 내용이다.

조후가 이 절을 경영할 적에 경내의 승도(僧徒)에게 명령하기를“ 부도(浮圖승려)가 된 자에 대해서는 나도 잘 알고 있다. 위로는 사은(四恩)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삼도(三塗)를 제도(濟度)한다고 하지 않는가.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는 절학무위(絶學無爲)의 경지에 오른 자가 상등인(上等人)이요, 열심히 강설하면서 쉬지 않고 교화하는 자가 차등인(差等人)이요, 머리 깎고 편히 거하면서 부역을 피하고 재산이나 모으는 자는 하등인(下等人)이라고 할 것이다.” 상등인이 되고 싶은가.

나는 상등인이 아닌 차등인이고 싶다. 나에겐 절학무위의 경지에 오를만한 능력이 없다. 그렇기에 쉬지 않고 교화하는 삶이야말로 내겐 최선의 삶이다. 우리에게 대리석은 없지만 맑은 물이 있다.

최고의 영역은 그것대로 존재이유가 있지만 최고만이 항상 최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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