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3-29 17:10 (금)
소소한 행복
상태바
소소한 행복
  • 전민일보
  • 승인 2018.08.31 10: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비가 그치고 난 뒤 바람이 한결 선선해졌다. 초저녁에 잠시 전주 천변을 산책하는데, 무리지어 늘어선 푸른 억새들이 바람에 나부낀다. 비에 젖은 바람은 어느새 추색이 묻어 있다.

도시 건물에서 쏟아진 불빛이 전주천 물 위를 화려하게 수놓는다. 물에 비친 불빛의 반영, 그 천변길을 걷는 사람들의 표정이 여유롭다.

바쁜 일상이지만 순간순간 느끼는 작은 즐거움이 있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수필,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막 구운 따끈한 빵을 손으로 뜯어 먹는 것, 오후의 햇빛이 나뭇잎 그림자를 그리는 걸 바라보며 브람스의 실내악을 듣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표현했다. 1970~80년대 힘들게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심리가 담긴 용어다.

그렇다. 행복은 반드시 50층 타워벨리스에 있는 것도 아니며, 고급 승용차 뒷좌석에 있는 것도 아니다. 한여름 힘껏 일한 뒤 샤워를 하고 먹는 시원한 소바한 그릇에도 행복이 담겨 있고, 땀이 조금 흐르는 산책 후의 막걸리 한 잔에 더없는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 또 추운 겨울 언 몸을 녹이는 뜨끈한 수제비가 목구멍에 넘어갈 때도 행복을 느낀다. 어쩌면 행복은 들에 핀 작은 꽃 한 송이에서, 갈증을 풀어주는 물 한 모금에서도, 소나기를 피해 들어간 이름 모를 카페에서 마시는 한 잔의 모과 커피에 녹아 흐르고 있을 지도 모른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에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탐욕이 드러난다. 맥베스와 그의 부인의 끊임없는 욕망은 그들을 왕과 왕비로 만들었다. 그러나 부부는 행복이 아닌 허무와 죄책감을 느낀다. 게다가 언제 그 자리에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까지 덮치면서 마침내 그들은 비극을 맞이한다.

모든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행복’을 찾아 질주한다. 현재의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더 큰 만족과 기쁨’을 갈구하며 끊임없이 내달린다. 하지만 ‘맥베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행복이라는 개념은 상대적인 것이기에 스스로를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권력과 명예와 많은 돈을 갖는 것이 행복이라고 여긴다. 이 말에 이론이 없다. 필시 돈을 벌기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절대 다수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간이 추구하는 최상의 행복은 부귀영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과 행복을 따로 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만큼 인간 삶에서 돈의 힘은 막강하다.

과연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누군가는 명예를 얻는 것으로부터 올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많은 부를 축적하는 것으로부터 올 수도 있다. 반대로 남을 위해 봉사를 하거나 베푸는 것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행복’이라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시점에서 온다. 그런데 작은 행복이 무엇이냐는 어느 설문조사에서 절반이 ‘혼술’이라고 대답했다는 건 좀 서글픈 현실이다. 꼭 혼자 술을 마실 때가 행복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일부 의식 있는 주당들의 술에 관한 기분 좋은 얘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비단 술이 아니더라도 문득 소소한 행복이 바로 내 곁에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빛바랜 고전의 한쪽을 읽을 때나, 내 사고와 비슷한 신문 사설이나 칼럼을 읽을 때, 서투른 창작물을 완성하고 창밖 하늘에 떠 있는 흰 구름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 휴대폰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다운 받아 그 음악에 빠져들 때, 순간순간 행복을 느낀다.

행복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다. 행복의 정의는 지극히 주관적이다. 세상에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 100명이 생각하는 행복이란 모두 다를 것이다. 그렇기에 스스로 무엇에 어떤 의미를 두느냐에 따라 자신의 인생관도 다르다.

행복이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두고, 개개인이 다르게 접근하여 자기 나름대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며 열심히 사는 것이 결국 이 세상과 사회를 이루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행복은 일생에 몇 개 안되는 큰 사건과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작은 일에서 느끼는 소소한 기쁨들이 하나 둘 모여져 행복지수를 높인다.

신영규 한국신문학협회 사무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청년 김대중의 정신을 이어가는 한동훈
  • 신천지예수교 전주교회-전북혈액원, 생명나눔업무 협약식
  • 남경호 목사, 개신교 청년 위한 신앙 어록집 ‘영감톡’ 출간
  • 우진미술기행 '빅토르 바자렐리'·'미셸 들라크루아'
  • 옥천문화연구원, 순창군 금과면 일대 ‘지역미래유산답사’
  • 도, ‘JST 공유대학’ 운영 돌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