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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전북 그리고 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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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전북 그리고 김제
  • 전민일보
  • 승인 2018.08.21 09:4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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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인인 정두경의 문집 [동명집(東溟集)]에는 병자호란 당시 활약한 한 인물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원두표가 이르러서는 아뢰기를 ‘금구현은 본디 일개 잔약한 고을인데 인근 고을의 무뢰배가 때를 틈타 난리를 일으켜 관고를 깨뜨리고 백방으로 위협하였습니다. 그런데도 현감 권현은 끝까지 동요하지 않고 나아가 관문을 지켰습니다. (중략) 남방의 군현들이 그에 힘입어 보전되었는바, 그 공을 따져 보면 윤전에게 비할 바가 아닙니다. 바라건대 해당 조(曹)로 하여금 논상(論賞)하여 충의(忠義)를 장려하게 하소서.’하였다.”

내게 이 기록이 특별했던 것은 [하멜표류기]에 등장하는 고향 금구에 대한 소식을 접하던 그 때 받았던 감회와 다르지 않다.

내게 하멜 일행이 제주도에서 서울로 향하던 그 일련의 과정을 상상력과 결합해 복원할 수 있는 근원이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금구 현감 권현이 병자호란 당시 보여준 활약상 역시 막연한 역사적 기록을 넘어 합리적 개연성을 가지고 당시를 유추할 수 있게 해준다. 둘 모두 그 원천은 내가 나서 자란 고향이기 때문이다. 관련해 고려시대 기록 하나 더 살펴보자.

1170년 무신정변을 성공시킨 정중부, 이의방, 이고는 왕으로 하여금 사면령을 내리게 하고 자신들은 벽상공신에 오른다.

그리고 마지막 조치로 행정구역을 변경한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기록이다. “이때 정중부는 서해도의 군현을 모두 그의 고향인 해주(海州)에 속하게 하고 이의방은 그의 외가(外家) 고을인 금구(金溝)를 현령관(縣令官)으로 승격시켰다.”

이의방의 외가인 금구가 내겐 고향이다. 행정구역개편이 권력을 가진 자의 전리품이라면 이의방에게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까.

그로부터 848년이 지난 지금은 어떠한가.

금산군(錦山郡)은 충남이다. 하지만 내 부모 세대 그 지역 친구들은 전주로 학교를 왔다.

전북 금산이었기 때문이다. 진산 사람으로 조선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이 전라감영으로 압송된 이유도 다르지 않다.

전동성당은 윤지충이 처형된 바로 그 자리에 세워졌다. 전북 금산이 충남 금산이 되던 순간의 상황에는 여러 논리가 있었을 것이다. 그 중엔 도청 소재지인 전주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도 포함된다. 어쩌면 그것은 현재까지도 전북을 향해 작용하는 강력한 원심력의 근원인지 모른다.

그런데 그것을 좀 더 좁혀보면 고향 김제도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다.

금구에서 나고 자란 나는 정서적으로는 물론 실질적인 이유에서도 김제가 아닌 전주에 소속감을 더욱 강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김제 주변엔 전주, 익산, 군산, 정읍처럼 상대적으로 큰 도시가 위치해 있다. 공덕 사람이 식당을 찾아 김제가 아닌 익산으로 향하는 것이나 청하 사람이 군산으로 쇼핑을 가는 이유는 내가 전주에 대해 느끼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확장판은 전주가 아닌 대전과 광주로 향하는 전북도민의 행렬이기도 하다.

전북 금산이 충남 금산으로 변한 과정은 정중부의 예와 같은 것일 수도 있고 김제와 전북에 가해지는 원심력과 같은 것이 동인이 되었을 수 도 있다. 보다 정확히는 그 두 가지 모두 명분과 실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분담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황에 변화가 없으며 오히려 양상이 더욱 악화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용인군이 100만 인구의 도시로 성장하는 과정이나 연기군이 세종시가 된 것은 극히 일부사례에 불과하다.

제주와 강원도를 제외하고 전주보다 작은 도청 소재지를 확인할 수 없다. 새만금 개발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다른 방안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전북이 있어야 대한민국도 존재할 수 있다.

“고향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상냥한 초보자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즐겨 인용했다는 시구의 처음처럼 고향이라는 어감엔 배타성이 배어 있다. 다른 사람, 다른 지역과의 차별성을 통해 지키고자 하는 그 무엇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 내게 고향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어쩌면 ‘약자의 민족주의’와 같은 것인지 모른다.

내가 어디 살던 고향이 전북 그리고 김제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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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별 2018-08-29 16:50:41
되찾아와야 합니다. 물론 금산군과 함께 빼앗긴 익산군 황화면도 되찾아와야 합니다. 이 배경에는 박정희 김종필이 있죠. 이들의 간교한 술책에 의해 전북의 노른자 땅을 착취당했습니다. 전북도민들이 일치 단결하여 우리 몫을 찾아와야 합니다. 일부 금산 군민들도 금산이 전북으로의 편입을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사막의 별 2018-08-29 16:42:07
충남 금산은 조선조 500년이 넘게 전북땅었지요. 그런데 전북 금산이 박정희 군사정권의 음모에 의해 충남으로 편입된 것은 1963년 1월 1일입니다. 금산의 충남으로의 편입은 의석 수를 더 늘리기 위한 공화당 정권의 폭거입니다. 대대로 전라도의 역사였고 정서였던 금산을 충남으로 편입시킨 것은 전북인을 무시한 폭거였던 것입니다. 이제 금산 땅을 전북땅으로 되찾아와야 합니다. 전북인들이 총 단합해서 금산군을 전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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