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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자룡은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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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자룡은 억울하다
  • 전민일보
  • 승인 2018.07.04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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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자룡 헌 칼 쓰듯 한다.’는 말이 있다.

돈이나 물건을 아끼지 않고 헤프게 쓰는 경우를 비유할 때 주로 쓴다. 그런데 조자룡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장판교 전투에서 단기필마로 유비의 아들 유선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조자룡의 행위가 본의 아니게 폄하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지만 무책임과 낭비를 상징하는 앞의 속담과 ‘조자룡 헌 칼’은 실제로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조자룡이 조달해 쓴 수많은 칼들은 낭비가 아닌 그의 용맹과 지혜를 상징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아무런 책임과 희생이 따르지 않는 선심이다.

세금을 내는 의무와 보조금을 받는 권리사이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불편하지만 대한민국에는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이 현실이다. 물론 거기엔 대한민국의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 소득이 많은 사람은 비례해 더욱 많은 세금을 내고 소득이 적은 계층은 상징적인 수준일지라도 적은 세금을 내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그것은 사회정의에 부합할 뿐 아니라 저소득 계층에게 세금을 내는 주권자로서의 자긍심을 심어주는 일이기도 하다. 거기엔 종교계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럼에도 교회와 사찰의 화려함과 물질적 풍요에 대한 세금을 얘기하면 성직에 대한 모독이란 답이 돌아온다.

나와 같은 힘없는 일개 백면서생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지 이 사회의 힘 있는 사람 누구도 함부로 얘기할 수 없는 성역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혈세인 각종 보조금 수혜에 대한 감사와 책임의식은 과연 얼마나 우리의 도덕적 판단 근거가 되고 있는가. 의문은 계속된다.

자신의 주머니에서 나가지 않는 세금과 현 세대가 지불하지 않는 각종 분홍빛 시책에 대한 청구서는 누구의 몫인가. 배려의 가면을 쓴 불공정과 불평등에 대한 담대한 지불은 누구로부터 받은 권위인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 세금’이라는 말은 전가의 보도가 아니다.

그 판단 역시 국민의 몫이기 때문이다. 제주도에 온 예멘 난민들은 왜 가까운 유럽이나 이웃 일본이 아닌 머나먼 제주도로 왔을까. 이러한 의문은 사소하지만 현 상황을 설명해주는 핵심이기도하다. 거기에도 브로커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난민 유입은 단순히 인도주의적 사고로만 접근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럼에도 참으로 아름다운 말이 넘쳐난다.

난민을 한국 제주도로 안내해주겠다는 국제적 브로커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적어도 대한민국의 국격이 인정받고 있음을 공인(?)해주는 일임에 분명하다. 어떤 이들은 그들에 대한 난민 심사도 필요 없이 전원 수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만일 그렇다면 제주도와 대한민국은 앞으로 난민의 최종적 파라다이스로 공인될 것이다. 제주도에 온 예멘 난민에 대한 처리결과는 유럽이 겪었고 현재도 진행 중인 각종 난민 문제들에 대해 한국 사회가 어떻게 대처할 지에 대한 시금석이 되기 때문이다.

가까운 유럽의 여러 나라와 경제적으로 더 풍요한 일본이 아닌 한국으로 향한 이들의 성공을 보며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은 향후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은 형평성의 문제와 함께 한국사회의 근본에 대한 새로운 설계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예멘 난민이 ‘수 십 만원이 들어있는 한국인 지갑을 찾아 돌려줬다.’거나, ‘무슬림 남편과 수 십 년을 살았지만 한국인들이 걱정하는 그 어떤 문제도 없었다.’는 미담으로 마무리 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경제적인 부담은 물론 향후에 있을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의 폭발성을 안고 가는 문제다.

난민들이 부다페스트 역이 아닌 제주도를 목표로 한다면 한국은 과연 그들 모두를 수용할 것인가. 이른바 정치적 경제적인 부분은 물론 인권에 있어서도 최고 수준이라는 EU에서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문제가 난민유입이다.

이것은 인종차별이나 혐오의 문제가 아니다. 이민과 노예제로 시작된 미국이나 식민통치의 유산으로 생긴 유럽의 경우가 한국 상황과 같을 수는 없다. 국제적 난민 브로커들이 한국을 천국으로 생각하는 순간 청구서는 미래세대의 몫이 될 것이다. 조자룡의 헌 칼은 아무나 쓸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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