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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도시 프라하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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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도시 프라하에는
  • 전민일보
  • 승인 2018.06.14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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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작품 중에는 기억나는 명대사가 없다. 평범하고 익숙한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현실적이다. 그래서일까. 카프카는 언제나 내 안에 존재한다.

언젠가 아내를 떠나보낸 지인을 위로한 적이 있다. 그의 아내는 수년간 투병 중이었다. 순간 그의 얼굴에서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가 죽던 날을 떠올렸다. 피크닉을 떠난 그레고르 가족 모습을.

프란츠 카프카의 도시 프라하에 다녀왔다. 관문인 바츨라프 하벨 국제공항은 낯설지 않았다.

모든 안내판에는 한글이 병기되어 있었고 입국 수속은 유쾌하기까지 했다. All passengers와 별도로 마련된 3열의 창구에는 한글로 [시민]이라 표기되어 있었다.

사실상 한국인 전용으로 입국절차는 거의 내국인 수준으로 신속하고 편리했다.

마침내 프라하에 도착한 것이다. 그런데 카프카와 더불어 내게 이 도시를 안내해준 인물이 한 명 더 있다.

27년 전, 런던 지하철역에서 만난 한 체코인이 주인공이다. 그는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이런 말을 던졌다.

“One dollar a day in Czech” 나는 이렇게 해석했다. “체코에서는 일 달러로 하루 생활이 가능하다.”

그는 내게 왜 그런 말을 했던 것일까. 내가 지하철에 올라 더 이상의 대화는 할 수 없었지만 아마도 그는 자신의 조국인 체코에도 관심을 가져달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살인적 물가를 자랑하는 런던에 살고 있는 그가 말한 체코의 현실은 정확히 어떤 것이었을까. 런던에서 일 달러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말하는 그의 표정은 우울하지 않고 유쾌했다.

그런 그가 서글프게 느껴진 것은 왜 그랬을까. 아마도 모든 것을 물질문명의 계량화에 따라 판단하는 내 오만과 편견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제 과거의 기억은 던져 버리고 내 앞에 나타난 살아있는 프라하 시내를 거닐었다.

카를교를 지나 얀 후스의 동상, 성 니콜라스 교회, 틴성당, 그리고 천문시계탑이 위치한 구시가지 광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세계 도처에서 온 사람들로 넘쳐나는 그곳에서 내 눈길을 끈 사람이 있었다. 그는 길바닥에 앉아서 빵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빵을 한 번은 자기 입에 그리고 다른 한 번은 자신의 반려견 입에 넣어주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그토록 상대방을 배려하는 음식 나눔을 본 적이 없다. 그 모습은 단순히 인간과 개의 만남이 아니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며칠 전 잘츠부르크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잘츠부르크 시내 한 골목에서 걸인이 구걸하고 있었다.

그리고 옆 자리엔 그의 반려견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런데 앞서가던 젊은 한국인이 멈춰서 걸인의 반려견을 조롱했다.

순간 걸인이 보인 격렬한 반감을 잊을 수 없다. 앞서간 한국인은 아무렇지 않은데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프라하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한다고 한다. “일본인은 확실히 구분할 수 있는데 한국인과 중국인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구분의 기준이 시끄럽고 배려심이 없으며 무례한 부분이라면 참으로 유감스런 일이다. 그래서 살펴봤다.

과연 그런가. 그런데 많은 군중 사이에서 우아하게 양산을 펴들고 다니는 귀부인은 거의 대부분 한국인과 중국인이었다.

양산으로 인해 다른 사람의 옷과 신체에 불편함이 초래되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굳이 나열하지 않겠지만 유치원에서 배웠어야 할 사항들이 지켜지지 않는 모습에서 한국인과 중국인이 닮아있고 그 부분이 일본인과 구분된다면 무엇으로 반박을 해야할 지 난감하다.

한때 여권 소지 여부가 신분의 상징이었던 시절이 있다. 그래서인지 27년 전 여권을 처음 신청했을 땐 덕진에 있던 반공회관에서 이른바 소양교육이란 것도 받아야 했다. 돈 있는 외국인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환영받는다.

하지만 그것이 곧 개인과 그 사회구성원에 대한 환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프라하에서 카프카 대신 두 가지를 보고 왔다.

하나는 우아한 양산의 행렬이고 다른 하나는 감동적인 거리에서의 만찬 장면이다. 다음에 프라하에 가게 되면 조용히 카프카를 만나봐야겠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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