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19 17:35 (금)
넘지 말아야 할 선
상태바
넘지 말아야 할 선
  • 전민일보
  • 승인 2018.06.07 09: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긍익은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서 사육신 사건 당시의 한 인물에 대한 얘기를 남기고 있다.

“정보(鄭保)를 연일(延日)에 귀양 보냈다. 정보의 성질이 방랑하여 구속을 받지 않으며, 성삼문·박팽년과 사이가 좋았다. 그 서매(庶妹)가 한명회의 첩이 되었는데, 육신의 옥이 일어날 때에, 한명회의 집에 가서 묻기를, ‘공이 어디 갔는가.’하니, 누이가 말하기를, ‘죄인을 국문하느라고 대궐에 있습니다.’하였다. 보가 손을 내두르며 말하기를, ‘그들이 무슨 죄인인가. 공이 만일 이 사람들을 죽이면 만고의 죄인이 될 것이다.’하고, 곧 옷을 떨치고 가버렸다. 한명회가 집에 돌아와서 그 말을 듣고 곧 입궐하여 아뢰기를, ‘정보가 난언(亂言)을 하였습니다.’하였다. 세조가 친히 국문하니, 아뢰기를, ‘항상 성삼문·박팽년을 성인군자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하였다. 좌우가 아뢰기를, ‘제가 이미 자백하였으니, 처형하소서.’하였다. 세조가 거열형을 명하고 나서 묻기를, ‘이는 어떤 사람인가.’하니, 좌우가 아뢰기를, ‘이는 정몽주(鄭夢周)의 손자입니다.’하였다. 급히 명하여 처형을 그치게 하고 이르기를, ‘충신의 후손이니 특별히 사형을 감하여 연일현으로 귀양 보내라.’하였다.”

여기서 인상적인 것은 극도로 흥분한 세조(世祖)가 그 와중에도 왕으로서 보여준 절제력이다. 세조 입장에서 사육신 사건은 신하들이 자신과 자신의 아들을 살해하고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음모였다.

정보가 정몽주의 손자여서 살려준다는 행위는 성리학적 정통성을 고양해야할 군주로서는 당연히 해야 할 상징조작임에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다른 영역의 문제다. 적어도 이 장면에서 세조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지키고 있다. 선을 지킨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적어도 내가 본 삶의 모습에서는. 여기 두 사람의 얘기가 있다.

에밀 졸라와 폴 세잔, 두 사람이 역사에 남긴 족적은 너무도 찬란하다. 두 사람은 친구였다. 그리고 중학교에서 시작된 둘의 우정은 이후 30년 동안 빛을 낸다. 그리고 그 결실은 두 사람만이 아닌 인류 모두의 것이 된다.

몸이 약한 에밀 졸라가 다른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할 때 그를 보호한 것은 폴 세잔이었다.

세잔이 훗날 사과를 많이 그렸던 것도 졸라가 고마움을 전한 사과 때문이라고 얘기할 정도다.

유명한 얘기지만 폴 세잔과 아돌프 히틀러 사이엔 공통점 하나가 있다. 둘 다 미술학교 시험에서 낙방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폴 세잔이 낙담해 그림을 포기하려 할 때 그를 격려해 화가의 길을 걷게 한 인물이 에밀 졸라다.

비극적인 것은 두 사람의 우정이 평생 지속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에밀 졸라가 선물한 소설[작품]때문이었다.

주인공인 실패한 천재 클로드 랑티에가 자신을 모델로 했다고 생각한 세잔이 졸라에게 절교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후 두 사람은 완전히 인연을 끊어버린다. 그런데 졸라와 세잔이 걸었던 길이 어느 순간 낯설지 않다.

죽마고우, 질풍노도의 시기를 함께한 고교동창, 격동의 시대를 함께 고민하고 토론했던 대학동기, 그리고 어려운 시절 함께 고생했던 지인들까지 어느 순간 내 곁을 떠나갔다.

상처에는 아물지 않는 것들이 있다. 졸라와 세잔이 겪었던 그 상처처럼. 어쩌면 징조는 그 전에 충분했을지 모른다. 무지하고 한계를 가진 내 생각임을 전제로 그것은 졸라와 세잔의 관계에서 까지도 그렇지 않았을까.

문제는 임계점을 넘어선 후이다. 더 이상 서로의 상처를 치유할 수 없는 그 지점은 관계의 종점이자 회복의 불능점이다.

개인 간의 관계는 그렇다 해도 그것이 공적인 영역이 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고위공직자는 물론 이 사회의 책임 있는 영역에 있는 사람들의 선택과 결정은 그 구성원 모두는 물론 후대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서로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표현하고 대응하는 방식에는 넘지 말아야 할 엄격한 선이 있다.

보수와 진보는 물론 우리 사회의 각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퍼붓는 저주에 가까운 말들은 선을 너무 많이 넘어섰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신천지예수교 전주교회-전북혈액원, 생명나눔업무 협약식
  • '2024 WYTF 전국유소년태권왕대회'서 실버태권도팀 활약
  • 남경호 목사, 개신교 청년 위한 신앙 어록집 ‘영감톡’ 출간
  • 이수민, 군산새만금국제마라톤 여자부 풀코스 3연패 도전
  • ㈜제이케이코스메틱, 글로벌 B2B 플랫폼 알리바바닷컴과 글로벌 진출 협력계약 체결
  • 맥주집창업 프랜차이즈 '치마이생', 체인점 창업비용 지원 프로모션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