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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와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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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와 딜레마
  • 전민일보
  • 승인 2018.05.21 1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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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농업인의 인건비 부담을 조사하기 위해 아는 분께 전화를 드렸다. “요즘 일꾼 하루 일당을 얼마나 주십니까.” 그분이 답했다. “한국인은 10만원, 외국인은 11만원을 줍니다.”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라는 의문에 다시 물었다. “한국인은 11만원, 외국인은 10만원인가요?”그러자 그분이 다시 답했다. “아뇨, 한국인이 10만원, 외국인이 11만원입니다.”그래서 물었다. “이유가 뭔가요?” 그는 이렇게 답했다.

“외국인은 시키면 아무 말 없이 하는데 한국인은 요구하는 게 많아서 그렇습니다.”

건설현장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지인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한국인이 일본에 가서 건설노동을 하면 일본인과 같은 임금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외국인들이 왜 일본이 아닌 한국을 오고 싶어 하는 지는 외국에 가서 일 해보면 알 수 있어.” 미국에 불법체류 중인 한국인이 목에 쇠사슬을 두르고 거리에 나가 인권을 얘기하면 미국인들의 반응은 어떠할까?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한국 건강보험의 수혜에 무임승차하는 외국인들의 비용은 그대로 한국인 납세자가 지불해야 할 몫으로 남는다.

땅콩항공에만 갑을이 있겠는가. 어쩌면 극적인 관계는 을사이의 갑을 관계다.

파락호 시절 대학 경비자리가 있다고 해서 찾아갔던 적이 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비정규직 경비의 위세를 확인했다.

나처럼 힘없고 배경없는 사람은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성역이었던 것이다. 은행이나 강원랜드에만 부정청탁이 있을까.

공공부분의 비정규직 중 정규직의 자리에 오르는 기쁨을 얻는 것은 오롯이 개인의 역량과 공정성에 의해 보장되는가.

조광조(趙光祖)를 언급할 때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현량과(賢良科)다.

과거제도만으로는 참다운 인재 선발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아래 숨은 인재를 천거를 통해 등용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그것은 조광조가 어느 날 문득 찾아낸 방안이 아니다. 멀리는 중국 한나라 때 기원을 두고 있으며 세종 때의 판서 박신(朴信)도 현량과에 급제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런데 이 제도가 좌절한 이유가 훈구파들의 반발때문 만이었을까.

고려 광종 때 처음 실시되어 갑오개혁으로 폐지될때까지 936년간 인재 등용문이 됐던 과거는 인류사에 획기적인 개혁이었다. 사람을 신분이나 배경이 아닌 실력만으로 평가한다는 사고는 인류사의 여정에서 보면 그리 오랜 시간이 아니다. 현량과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약점은 바로 그 부분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에 왔던 서긍(徐兢)은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한 인물에 대한 평을 남기고 있다.

“고려는 매양 중조(中朝)에서 사신이 가게 되면 반드시 인재를 선발하거나 혹은 조공 갔던 사람으로 관반을 삼는다. 지미는 곧 자겸의 아들인데, 풍채와 용모가 준수하고 아름답다. 언젠가 천궐(天闕)에 조회하고 여러 달 동안 관(館)에 머무르면서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지미가 처결하였는데 예(禮)에 맞지 않는 것이 없었고, 동작이 찬찬하고 단아하여 여유작작하게 중화의 풍도가 있었으며, 매양 조정 일에 언급되면 반드시 권권(眷眷)하게 쏠리는 뜻이 있었으니, 그의 충성이 또한 가상하다고 할 만 했다.”현량과는 그 의도와는 무관하게 이지미와 같은 명문가 출신이 거의 과반을 차지했다.

시험을 통해 인재를 선발하는 가장 큰 목적은 개인의 능력이 아닌 공정성의 담보에 있다. 시험성적이 우수하다고 유능하다는 보장은 없지만 ‘게임의 룰’이 가져야 할 공정성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서 가장 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도 바로 공정함과 투명성의 부분이다. 필리핀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김포에 근무한다는 필리핀인 노동자가 유창한 한국말로 한국인 사장에게 욕을 하는 것을 들으면서 나는 이렇게 답해줬다. “어디에나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죠.” 그에겐 얘기하지 않았지만 필리핀에서 사업을 하던 친구는 필리핀인에게 억울한 일을 당한 수많은 한국인 얘기를 내게 들려줬다. 선의(善意)의 종착이 모두의 행복으로 귀결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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