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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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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에 대하여
  • 전민일보
  • 승인 2018.05.04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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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화창한 날씨다. 나르키소스의 현신이라는 수선화가 봄날이 다 가도록 줄곧 설레게 하더니, 어느새 그 자리에 튤립이 세를 펴고 있다.

튤립 이름을 건 지역 축제 소식들이 포털사이트의 메인에 줄곧 오르내리기도 하지만, 사실 튤립을 만나는 데 그런 먼 걸음이 꼭 필요한 건 아니다.

자주 걷는 길에서도 심심찮게 튤립 꽃밭들을 자주 만나게 되고, 잠시 서서 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축제가 부럽지 않을 만큼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튤립이 우리나라 향토 꽃이 아니기 때문일까.

유독 튤립은 어디에서 만나든 그 특유의 이국적인 느낌으로 우리를 사로잡아버린다.

그러고 보면 튤립만큼 이국적인 꽃도 없다.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많은 꽃들은 대부분 잔잔하게 흐드러져서 군집을 이루었을 때 한 폭의 수채화 같은 느낌을 주는 수수한 단색 꽃이 대부분이다.

그에 비해 튤립은 채도가 높은 원색에 선이 진한 외형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유화 같은 느낌도 아니다.

마치 고성능의 프린터로 갓 뽑아낸 고해상도의 사진 같은 느낌이랄까.

우리 전통적 정서로는 존재감이 강한 한 송이의 꽃보다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서로 어우러지는 배경이 되어주는 꽃들이 더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유채도, 동백꽃도, 수국도 그 아름답게 흐드러지는 모습이 얼마나 많은 그림과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가. 지난 가을, ‘인생사진’의 명소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은 핑크뮬리도 그렇다.

이름만 들어서는 외래종 같지만 사실은 분홍억새의 일종으로, 가을과 단풍놀이의 오랜 일대일 관계를 깨뜨리고 새로운 가을 산책코스로 자리 잡았다. 핑크뮬리의 연하고 채도가 낮은 분홍색이 오랜 우리 정서와 잘 맞았던 탓일 테다.

그러나 튤립은 분명히 다르다. 길고 곧게 뻗은 줄기에 고고하게 달린, 마치 진한 바탕 선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원색 크레용으로 꾹꾹 눌러 색칠한 듯 선명한 이 꽃은 더 이상 배경이라기보다는 나 홀로 존재감을 뽐내는 주인공에 더 적합하다.

혼자여서가 아니다. 오히려 다른 꽃들과 함께 일때 더욱 자신의 존재감을 돋보이는 프리마돈나 같은 우아한 아우라가 있다.

이름도 그렇다. ‘튤립’이라는 이름의 자음과 모음 하나하나가 그토록 외래어 같을 수 없다. 봄날의 개나리, 진달래에서 제비꽃까지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 우리의 발음인가. ‘ㅌ’이라는 거센 파열음으로 음절을 시작하는 꽃이라니. 심지어, 그 거센 파열음 뒤에 붙는 ‘ㅠ’라는 쌍자음은 그 존재감을 배가시킨다.

그래, 애초에 처음부터 그 생김새가 왕관처럼 화려하여 귀족들만 즐길 수 있는 꽃이었다는데, 잔잔하기만 한 이름은 재미없지. 이 정도 강렬한 이름은 붙어야 그 세련된 외형에 어울리겠다 싶다고나 할까.

이렇게 매력이 넘치는 꽃이어서 그런지, 아직도 터키와 네덜란드는 서로 튤립의 나라라는 ‘원조’논쟁이 있다고 한다.

튤립의 원산지는 터키로, 튤립의 재배지는 네덜란드로 서로 어느 정도 합의를 한 모양이지만 터키의 ‘이스탄불 튤립 축제’와 네덜란드의 ‘쿠켄호프 튤립축제’를 보고 있노라면 두 나라가 가지고 있는 튤립의 자부심이 얼마나 상당한지가 느껴진다.

특히 네덜란드 사람들의 튤립 사랑은 유명하다.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화가 빈센트 반 고흐도 정신적으로 불안정할 때 마음의 위로를 얻고 새로운 예술적영감을 얻기 위해 찾는 장소가 정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강렬한 색채와 투박하고 거친 터치로 유명한 그이지만, 유독 그의 작품 <네덜란드 튤립꽃밭>만큼은 밝고 맑은 색채로 표현되어 있다.

고흐의 주요 화풍과는 조금 달라 유명한 작품으로 꼽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봄이 되어 튤립이 피는 나날에는 튤립 꽃구경만큼이나 큰 감상을 주는 작품이다.

사실 마냥 봄날이 좋은 이유는 그 포근한 날씨와 한가득 세상을 메우는 꽃들의 자태 때문일 것이다. 누구는 봄을 잔인한 계절이라고 했지만, 사실 봄은 매혹적인 계절임에 틀림없다. 특히, 튤립이 이토록 아름다운 5월에는.

김한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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