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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이 아닌 백두산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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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이 아닌 백두산에 가고 싶다
  • 전민일보
  • 승인 2018.04.30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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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펼쳐진 블랙코미디 하나다. 국어 고문을 가르치던 교사가 수업시간에 이렇게 말했다. “북한 강계는 미인이 많기로 유명하죠.”지문에 등장한 강계를 설명하던 중 나온 말이었다. 물론 교사는 그것이 심각한 문제가 되리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며칠 후 공안기관에서 그를 찾았다. 영문도 모른체 끌려간 취조실에서 그는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당신, 북한 강계 가봤어?”물론 그는 강계에 가보지 못했다. 정보기관 담당자의 그 질문은 쿠바의 아바나에 가보지 않은 내가 아바나에서의 헤밍웨이에 대해 말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안기부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된 경위다. 수업을 듣던 학생 중 한 명이 소명의식을 가지고 나선 것이다. 그 학생에겐 선생님이 북한 간첩으로 의심되기에 충분했고 그는 배운 대로 신고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 전주고 강당에서 강연이 있었다. 동유럽에서 유학도중 한국으로 망명한 북한 대학생들의 안보 강연이었다.

북한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던 나는 그들의 얘기를 경청했다. 강연이 끝나고 그들에게 질문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때 누군가 그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북한에서는 부모 자식 간에도 서로 고발하고 한다는데 사실인가요?”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순간 짧지만 강렬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그 북한 유학생은 이렇게 답했다.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 북쪽이라고 다르겠습니까?” 그 이후 더 이상의 질문은 없었다.

나는 내가 듣고 본 그 두 상황 속에서 미움과 불신이 형제를 어떻게 악마화 할 수 있는지 충분히 알게 되었다.

연방제와 평화협정이 남쪽에서 오랜 기간 어쩌면 지금까지도 금기어가 된 것은 동무라는 단어가 남쪽에서 사라지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악마의 제의와 그들이 사용하는 단어를 어찌 의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그런 양상은 남쪽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북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이 줄기차게 요구한 주한미군철수는 남측의 의구심과 경계만 강화시켰기 때문이다.

1968년 청와대 습격사건이나 1976년 8월 18일 판문점에서 벌어진 도끼만행사건은 물론 최근의 연평도 포격사건까지 일촉즉발의 심각한 상황 속에서 한국의 보복공격을 억제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주한미군의 존재였다. 매파는 북쪽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한반도의 핵 위기는 민족의 공멸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 시기에 열린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은 온 민족은 물론 전 인류에게도 희망과 복된 소식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기회는 남과 북 모두 서로에 대한 불신을 걷어내고 민족공영의 길로 나서야 할 절호의 시간이 될 것이다.

핵을 포기한 이북에 대해 전 세계인은 물론 남쪽의 동포들은 아낌없는 지원으로 보답할 것이다. 이북에 대한 남쪽의 투자와 지원은 민족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당연한 책무다.

통일비용이 아무리 크다 한 들 분단비용에 비할 수 있겠는가. 섣부른 낙관과 기대를 경계하면서 동시에 우리는 멈추지 않고 한 발 한 발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 내 딛는 작은 발걸음이 모인 어느 순간 남과 북은 공동의 종착점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성호 이익은 이렇게 말했다. “백두산은 우리나라 산맥의 조종이다.” 섬나라 아닌 섬나라로 살고 있는 이 상황은 이제 종말을 고해야 한다. 그리고 백두산을 넘어 광활한 아시아와 유럽까지 기차와 자동차로 달릴 수 있는 그날은 반드시 올 것이다. [승정원일기]에서 고종은 신하와 이런 문답을 나눈다.

“금나라는 여진의 부락으로서 장백산에 있는데, 남쪽과 북쪽으로 경계가 되어 생여진과 숙여진이라 칭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장백산은 어느 경계에 있는가?’하자, 정기세가 아뢰기를, ‘장백산은 곧 우리나라의 백두산입니다.’(하였다.)”

나는 장백산을 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은 백두산이다. 더불어 사리원, 평양, 함흥, 원산 그리고 개마고원까지 내 차로 갈 수 있는 그날을 기원하는 것이 어찌 나뿐이겠는가. 너무도 감상주의적이라고.

때론 그래야 한다. 울고 싶을 때 울고 웃고 싶을 때 웃는 것에 남과 북이 어찌 다르겠는가.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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