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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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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
  • 전민일보
  • 승인 2018.04.20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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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제게 물어보았습니다.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 무엇을 하겠느냐구요? 가족이나 이웃과 보다 나은 공존을 위한 자기 성찰과 기도의 시간을 갖겠다고 대답했던 20대의 순수했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저는 혼자만의 시간이 되면 우선 제 마음속에 있는 옷장의 문을 활짝 열어봅니다. 옷장속에는 제가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옷들이 헝클어져있습니다. 이기의 얼룩이 겉옷에 묻어 있고 편협과 조급함의 먼지도 블라우스 칼라에 묻어 있고 스커어트의 주름도 부족한 용기로 구겨져 있습니다.

그 옷들을 보는 순간 부끄러운 마음이 앞서 얼른 옷장에서 꺼내어 물에 담급니다. 관조의 세탁비누를 충분히 발라 비비고 주무르고, 두들기고, 혹은 열탕에 삶은 후 맑은 물에 여러 번 헹구어 햇빛에 말립니다.

이런 세탁 과장을 거치는 동안 하얀 블라우스는 눈부시게 표백이 되고 분홍빛 스커어트는 본래의 고운 분홍빛이 흐릅니다.

때로는 세탁한 옷에 겸허와 인내의 풀을 빳빳하게 먹여 다림질을 하기도 하지요. 이렇게 하여 옷장 속에 곱게 걸어두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외출을 기다립니다. 외출시에는 친절과 미소라는 방향제를 살짝 뿌리는 것도 좋겠지요.

저는 대학 병원 약국에 근무하고 있는데, 가장 많이 만나는 대상은 물론 환자와 그 보호자들입니다. 조제실에서든지 또는 병실에서든지 혹은 수술실 앞 보호자 대기실에서든지 그 분들을 만나면 미력하나마 그 분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고자 노력합니다.

약국 투약구에서는 조제된 약을 환자들에게 전달하면서 그들이 복용법과 주의 사항을 제대로 이해할 때까지 차근 차근 설명해줍니다.

또 수술실 앞 보호자 대기실을 지나가다 보면 안타까운 광경이 많이 보입니다. 가슴 조이며 수술 결과를 기다리는 수술환자의 보호자분들, 어떤 분은 울고 계시고 어떤 분은 기도하고 계십니다. 저는 이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 까 하여 다음과 같은 문구의 액자를 제작하여 수술실 앞에 걸어두었습니다.

지금 당신의 가까운 분이
받고 계시는 수술은
더욱 건강해지고
더욱 아름다워지기 위한
잠시 잠깐의 수면입니다.

만약에 제가 만났던 환자나 보호자들이 작은 제 행동에서 다소나마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면 그 분들이 병을 완치하고 사회에 나아가 각자의 일선에서 생업에 임하실 때 모든 정성을 쏟으시리라고 확신합니다.

가령 그 분이 의류 제조업을 하신다면 그 분의 형제나 자녀에게 만족하게 입힐 수 있는 예쁘고 튼튼한 옷을 만들 것이고 또 제과업을 하고 계신다면 그분의 자녀에게 안심하고 먹일 수 있는 맛있고 영양가 높은 과자를 틀림없이 만드실 것입니다.

또 건축업을 하시는 분이라면 단단한 기초위에 실용적이고 미려한 주택을 건축하실 것이고, 또 음악을 하시는 분이라면 이웃들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고운 멜로디의 음악을 작곡하시겠지요. 한편 정치를 하시는 분이라면 그 이웃이 주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봉사하는 자세를 정녕 가지실 것입니다.

우리의 이웃들이 만든 예쁘고 튼튼한 옷을 입고, 또한 위생적이고 영양이 고루 갖춰진 믿을 수 있는 음식을 먹고, 쾌적하고 미려한 집에서 아름다운 멜로디를 들으면서 정서를 순화하고, 우리의 주권을 바르게 행사하여 우리가 심신으로 건강하게 생활한다면 우리에게 삶을 부여한 조물주의 뜻이 거기에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삶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생각해봅니다.

나의 가족, 나아가 주변의 이웃과 더불어 호흡하면서 힘껏 그들을 격려해 주고 또 그 입장이 되어 이해해 주는 한편 그들에게서 제가 격려 받아 공존하는 것이라고.

또 다시 저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지면 어릴 때 읽은 동화를 즐겨 읽습니다.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이야기는 참된 사랑이란 ‘자기 희생’이라는 의미를 일러주고 있고요. 이태리 동화 아미치스의 사랑의 학교는 저를 초등학교시절의 순수로 데려다 줍니다. 또 시간이 나면 역사책을 펴들고 고대 문명의 발상지로 거슬러 가는 시간여행을 합니다.

나일강의 범람을 구경하고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에 범선을 띄웁니다. 그 배를 타고 중세를 거치고 르네상스의 예술 작품을 구경하다가 다시 근대, 현대로 돌아와 그 역사의 강물에 나의 참 모습을 비춰봅니다. 역사는 거울이며 무언의 스승이라고 하지요.

또 다시 저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지면 맑은 음향을 즐깁니다. 봄비라도 내리는 날은 그 초록빛 내음의 빗소리와 함께 쇼팽의 피아노곡 빗방울 전주곡을 듣습니다.

헤르만 프라이의 미성으로 슈만 가곡 시인의 사랑을 들으며 감미로운 정서에 빠지기도 하고요. 또 아무도 없는 조용한 휴일의 오후에는 베버의 무도회에의 권유의 음반을 올려놓고 거울을 보며 발레리나의 포즈를 지어 봅니다. 아무도 없을 때 말이에요.

소현숙 전북도 여약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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