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25 14:09 (목)
황혼이혼의 대안이 될 졸혼
상태바
황혼이혼의 대안이 될 졸혼
  • 전민일보
  • 승인 2018.03.09 09: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느 일간지 기자가 쓴 졸혼에 대한 글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졸혼은 백세시대에 맞는 결혼제도로, 때가 지나면 학교를 졸업하듯 결혼도 일정 기간이 지난면 종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졸혼은 2004년 일본의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쓴 ‘졸혼을 권함’이란 책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요즘 일본에서는 중년 부부 사이에 졸혼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졸혼은 혼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므로 이혼과는 다르다. 자녀가 장성한 뒤 부부가 따로 살며 각자의 삶을 즐기는데, 한 달에 한두 차례 정기적으로 만난다는 점에서 별거와도 다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증가하고 있는 황혼이혼의 대안으로 검토해볼 만한게 아닐까 싶다.

졸혼의 개념은 인간의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등장했다. 장수국인 일본에서 시작되었지만, 머지않아 우리나라에도 바람이 불어올 전망이다. 아무리 긴시간을 공유해도 서로 다른 객체일 수밖에 없는 두사람이 마지막까지‘지지고 볶으며’사는게 과연 옳은지 의문이 들기도 하다. 그동안 억눌려왔던 자아성취 욕구가 되살아나는 것도 한 원인이다.

어느 결혼정보회사의 설문조사에서는 졸혼에 대해 57%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이유로 ‘결혼생활 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노후에라도 하고 싶어서’가 가장 높았다. 그다음으로 ‘배우자의 간섭을 피하려고’이고, ‘사랑이 식은 상태로 결혼생활을 유지할 것 같아서’를 끝으로 꼽았다.

졸혼은 사이가 나빠서 갈라서는 것은 물론 아니다. 부부로서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따로따로 각자의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방식이다. 가족이라는 구속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자유를 인정하자는 주의다. 가족은 힘과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도 많다. 더구나 노년의 구속은 견디기 힘들며, 너무 오래 함께 살아서 지겨워질 때도 있다.

황혼이혼이 젊은이들의 이혼 비율보다 높다. 남의 눈치 때문에 헤어지지 못하는 부부에게는 졸혼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스기야마 부부는 걸어서 25분 떨어진 아파트에 따로 살며 한달에 두 번 만나 식사를 한다. 서로의 생활에 간섭하지 않는데, 경제적 여유가 있고 자아성취 욕구가 강한 이들 부부에게는 잘맞는 해법이라고 했다.

졸혼과 비슷한 형태로 해혼이 있다. 혼인관계의 해제를 의미한다. 인도 힌두교에서 남자가 가장의 임무를 마친 뒤 구도의 삶을 원하면 해혼식을 하고 숲으로 간다. 간디는 삼십 대 후반에 아내와 해혼에 합의하고 독립운동의 길로 나섰다.

졸혼은 가정도 그대로 유지되고 자녀들에게도 부모가 이혼하지 않아 좋다. 이제는 남편(아내) 없이도 살 수 있다. 얼마나 더 산다고 골칫덩이인 남편(아내)과 살아야만 하나. 황혼에 접어든 인생을 이렇게 구속받고 살아야만 할까 회의가 들 때도 있다.

부부가 각자 떨어져 살며 서로 친구처럼 지내는 졸혼이 현대판 백년해로 아닐가 싶다.

우리나라에선 오래전부터 졸혼이 있었다. 여러 TV방송국에서 ‘자연인’과 그와 유사한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는데, 시청률이 높은 편이라고 한다. 여기에 나오는 많은 사람이 졸혼을 한 경우다. 사연이야 가지가지겠지만, 대부분 아내는 도시에 살고 남편이 산이나 섬에서 홀로 산다. 세상 물욕에서 벗어나 자연을 벗 삼는 자연인이 되어 유유자적하며 산다. 은퇴하고 농촌에 내려가 텃밭을 가구며 한가롭게 사는 사람들, 이들은 의식하진 못하나 졸혼은 한 케이스라고 하겠다.

장수군 청산계곡에서 별장을 짓고 사과농사를 하는 지인은 10여년이 넘도로 아내와 떨어져 지낸다. 아내는 가끔 찬거리를 가져오고 살림을 점검한다.

남편은 돈이 모이면 생활비에 보태라고 아내에게 준다. 부부가 언제 한집에 모여 살는지 기약이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의 애정에는 변함이 없는 듯하다.

나는 어떤가? 아내와 떨어져 지낸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은퇴한 뒤 함께 여행도 다니고 취미와 건강생활을 같이하자고 약속했다. 그런데 가끔 아내가 불평하거나 지나치게 간섭을 하면 슬그머니 짜증이 나 밖으로 내뺀다. 그럴 땐 자연인이 부럽기도 하나, 이내 마음을 다스리고 평정을 찾는다. 졸혼을 해도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 아닐 것이다.

졸혼은 선각들이 시도해 볼 수 있는 방도다. 황혼이혼을 요구하는 아내나 남편이 있다면 졸혼으로 수준을 낮추어도 괜찮지 싶다. 특히 자녀에게 충격을 덜 주게 될 테니까.

인간이 만든 사회제도와 풍습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달라지게 마련인데 앞으로 우리 주위에서 졸혼을 하는 노년 부부가 얼마나 있을지 궁금하다.

김현준 수필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신천지예수교 전주교회-전북혈액원, 생명나눔업무 협약식
  • '2024 WYTF 전국유소년태권왕대회'서 실버태권도팀 활약
  • 군산 나포중 총동창회 화합 한마당 체육대회 성황
  • 기미잡티레이저 대신 집에서 장희빈미안법으로 얼굴 잡티제거?
  • 이수민, 군산새만금국제마라톤 여자부 풀코스 3연패 도전
  • 대한행정사회, 유사직역 통폐합주장에 반박 성명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