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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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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절벽
  • 전민일보
  • 승인 2018.03.0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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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차를 돌릴 때마다 묵직한 소음이 박차고 나왔다. 이때마다 재채기 나오듯 잠시 잠깐 일어난 것이라고 애써 외면해버렸다. 차가 출고한 날짜를 셈하니 일곱 해째 되었다. 다른 사람에 비해 볼일이 많은 탓에 차를 많이 써 주인을 잘못 만난 차가 고생한다. 오전에 아버지 안과와 치과에 들렀다. 한 달전 폭설이 내렸다. 앞집 영기 어머니께서 독한 감기를 앓는 어머니 병문안을 오시다 눈밭에서 넘어지셨다. 골반에 금이 가 한 달째 병원에 입원하고 계신다. 이번에는 부모님과 내가 병문안을 다녀왔다.

정오가 턱밑에 걸렸다. 다른 날에 비해 차에서 나는 소음이 널브러졌다. 점심을 먹자마자 서비스센터에 들렀다. 양쪽 ‘소바’가 다 깨졌다고 했다. ‘소바’뿐만 아니라 낯선 부품 이름을 여럿 댔다. 바퀴가 빠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며 수리비용이 많이 나온다고 했다. 토요일은 2시까지만 일한다는 것을 수분이 마르게 통사정하여 정비를 맡겼다.

작업실에 이르렀다. 오전에 부모님 모시고 병원 다녀온 것에 착안하여 「만학도 아부지 엄니」란 시를 썼다.

“젊은 시절 없는 살림에 땅만 줄기차게 파고 새끼들 먹잇감 물어 나르시느라 공부 깊이 하지 못한 아부지 엄니 요즘 융복합 전공 한창이시다 새끼들 맘 환히 들여다보시는 눈 정작 안개 자욱하고 물만 닿아도 이(齒) 한겨울인 아부지 뫼시고 안과와 치과다녀왔다 아들 모래재 너머 소망의 집에 보내고 애기 티 벗을 기미 없는 손자 녀석 땜시 오장육부 성할 날 없는 게다가 온 신경 통증의 뿌리 불쑥불쑥 뻗은 엄니 뫼시고 내과와 신경과 다녀왔다 오랜 감기 끝 폐렴 앓은 엄니한테 생강차 끓여 눈밭 밟고 오시다 골반 금간 영기 엄니 병문안도 다녀왔다 정형외과였다 할 수 없든 하기 싫든 나이 먹으면 어차피 우리 몸뚱이 참고 읽어야 할 교재이다 耳順인 내 몸도 아부지 엄니 밑줄 친 곳 따라 읽으며 독자 가문 통증 발표한다”

4시쯤 서비스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수리비용이 60만 원 나왔다. 카드로 5개월 할부하여 결재했다. 문제는 또 있었다. 소바가 터지고 휠 얼라이먼트가 어긋나는 바람에 앞바퀴 타이어가 닳아 철심이 다 드러났다. 타이어를 바꾼 지 9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웃음이 멋쩍게 나왔다. 상상 속에서 난감해지고 절망스러운 일이 막상 눈앞에 민낯으로 다가오면 오히려 차분해질 때가 있다. 어쩌면 우리 의식 속에 불행을 애써 잠그려는 자물쇠가 잠재해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부랴부랴 타이어 수리점으로 갔다. 서비스센터와 똑같은 진단을 내렸다. 앞바퀴 타이어를 바꾸고 휠얼라이먼트를 잡았다. 40만 원이 덤으로 들어갔다. 역시 카드로 5개월 할부하여 계산하였다. 자동차도 사람처럼 나이를 먹으면 몸 곳곳에 통증이 자란다. 병들기 전에 건강검진을 잘해야 하듯 자동차도 미리 정비를 잘 해야 한다. 그래야 큰돈 들이지 않고 사고를 미리 막을 수 있다. 오늘 전혀 뜻하지 않게 차를 수리하느라 100만 원이 들었다. 요즘 돈 쓸 일이 물크러져 혼잣말로 볼멘소리깨나 나왔다. 불평불만이 마음의 독약인 줄 알면서도 탱탱하게 마음먹었던 평정심이 탄력을 잃었다.

석양 그림자를 밟고 작업실로 돌아왔다. 증폭된 허기가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도시락을 꺼냈다. 시장이 반찬이란 말이 이렇게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을까. 단출한 찬 한두 개로 밥을 달짝지근하게 먹었다. 배를 적당히 채우고 나자, 의외로 들어간 돈 때문에 눈알이 뱅글거렸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100만 원을 들여서 내 생명줄을 건지고, 다른 사람 생명을 구했다고 애써 생각했다. 말랑말랑하게 물러 터졌던 평화가 마음 곳곳으로 고요히 스며들었다.

감사는 캄캄절벽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오늘 일어난 일을 곰곰이 돌아보니 매 순간순간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차를 수리하고 타이어를 교체하는 시간이나 공정이 빈틈 하나 없었다.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많다. 깨우침은 돈으로 살 수 없다. 깨우침과 감사는 독거하지 않고, 공동체처럼 이마를 맞대며 산다. 살다보면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생각하지도 않은 독자가 전화를 했다. 이번에 발간한 시집과 수필집을 10권 보내달라고 했다.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 교인들에게 나눠주고 싶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비운 순간, 빈 곳을 바로 채워 주시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은 온통 책을 꽂아놓은 서재와 같다. 세상살이는 밑줄 치며 부단하게 읽는 독서 활동의 연속이다. 오늘 읽은 내용 가운데 마음환하게 해 준 문장 아래 굵직하게 밑줄을 긋는다. 잠언처럼 마음속으로 깊숙이 불러들인다.

“캄캄절벽에 이를지라도 주저하지 말고 감사하자.”

최재선 한일장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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