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3-29 23:09 (금)
인촌을 부관참시 해야 하나
상태바
인촌을 부관참시 해야 하나
  • 전민일보
  • 승인 2018.03.06 10:13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유제 장태수 선생이 단식 끝에 순국하기 전 종손인 일송 장현식 선생에게 조국과 가문의 미래에 대한 당부의 말을 남긴다. 그리고 일송은 종조부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은 삶을 살았다.

일송이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함흥형무소에 수감되었을 때 일제는 그의 혀에 대침을 찌르는 고문을 가했다. 해방 후, 일송이 일부 사람들로부터 벙어리라 조롱받게 된 것은 그런 점에서 너무도 가슴 아픈 장면이다.

놀라운 사실은 그와 고초를 같이 한 조선어학회 33인중 단 한 명도 변절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후손들은 선열들을 기리는 모임을 지금도 잊지 않고 함께 하고 있다.

일송과 관련된 일화 중 하나다. 춘원 이광수가 마땅히 거처할 곳이 없다는 소식에 일송은 그가 거처할 집을 마련해줬다. 그런데 후일 이광수의 변절 소식에 일송은 그와의 인연을 끊어버린다. 그런 그가 유독 동지적 관계를 끝까지 놓지 않은 인물이 있다. 바로 인촌 김성수다.

지금의 고려대와 동아일보 설립에도 일송이 함께 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친일파라는 인촌 김성수를 일송은 왜 동지로 생각했던 것일까.

인촌에 대한 친일 논란은 어느날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 국무위원과 정치부장을 지내고 해방 후 한국독립당 감찰위원장을 지낸 김승학은 1948년 [친일파 군상]이라는 원고를 작성하는데 거기엔 263명의 친일파 명단이 올라있다.

이 자료가 중요한 것은 동시대를 살았고 친일문제에서 완벽히 자유로운 임시정부 관계자의 기록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김승학은 인촌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모 정당 측에서는 김성수도 전시협력이 많았다 하여 친일파시한다. 그러나 전시에 모모 단체, 모종집회 등에 김성수의 명의가 나타난 것은 왜적과 그 주구배들이 김성수 명의를 대부분 도용한 것이라 하며, 김성수 자신이 출석 또는 승낙한 일은 별로 없다고 한다. 그리고 김성수는 조선의 교육사업, 문화사업을 위한 큰 공로자인 동시에 큰 희생자이다. 그는 광대한 사업을 유지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그 이름을 낸 일이 있었다고 한다.”

김승학이 얘기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그 이름을 낸 일’이 인촌이 친일파로 규정되는 근거가 된다. 그럼에도 김승학은 인촌을 비난하는 대신 ‘큰 공로자인 동시에 큰 희생자’로 얘기하고 있다. 임시정부에서의 영향력은 물론이지만 한국독립당도 김구 선생이 만든 당이다.

친일파 청산에서 안중근 의사의 아들 안중생에게도 예외를 두지 않았던 바로 거기에 속한 김승학이 인촌에게만 유달리 후한 평을 내려야 할 이유는 찾기 힘들다.

미국이나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것과 일본제국주의의 압제 하 조선에서의 그것은 양상이 같을 수 없다.

인촌이 독립자금을 받으러 온 사람을 방에 앉혀놓고 아무 말 없이 금고문만 열어둔 채 나가버렸다는 얘기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것을 비겁한 보신책이라 얘기할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프랑스가 나치부역자를 처벌한 것과 한국 친일파청산을 비교한다. 만일 한국이 프랑스 상황이었다면 우리가 그들보다 못할 이유가 없다. 프랑스가 나치치하에 있던 시기는 불과 5년도 되지 않는다.

후일 변절한 수많은 우국지사들이 수 십 년간 지조를 잃지 않았던 것은 그것과 무관치 않다. 일제의 한국강점은 36년, 을사늑약부터라면 40년이 넘는 세월이다.

세대가 바뀌는 세월이다. 그 시절 흠으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운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인촌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를 국민장으로 예우한 당시 사람들은 역사의식이 결여되어 그런 것일까. 오늘 우리가 인촌과 동시대를 산 사람들과 비교해 어떤 도덕적 우월성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일제시대를 살아가면서 티 하나 없이 완벽한 모습을 보여준 선열들이 결코 없지 않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현재의 기준으로 재단하는 것에는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린 시절 내 성기를 아무렇지 않게 잡으며 귀여움을 표시했던 할아버지들이 성추행범이 되는 것을 나는 원치 않는다. 인촌에 대한 부관참시도 그렇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ㅈㅈㅈㅈ 2018-03-13 10:00:14
이렇게 좋은 글 정말 드물게 봅니다.

DLGHWNS 2018-03-06 11:16:40
참으로 신중하고 균형 잡힌 글을 쓰셨습니다. 프랑스가 전범을 처리한 것은 그 반역자들이 자국민 39만명을 학살하는 데 앞장 섰기 때문입니다. 어디 인촌 선생이 이런 일에 앞장을 섰다느 것인지...완전 허구를 과장하여 웅병을 하는 식으로 어른을 욕보이는 것이지요

주요기사
이슈포토
  • 청년 김대중의 정신을 이어가는 한동훈
  • 신천지예수교 전주교회-전북혈액원, 생명나눔업무 협약식
  • 남경호 목사, 개신교 청년 위한 신앙 어록집 ‘영감톡’ 출간
  • 우진미술기행 '빅토르 바자렐리'·'미셸 들라크루아'
  • 옥천문화연구원, 순창군 금과면 일대 ‘지역미래유산답사’
  • 도, ‘JST 공유대학’ 운영 돌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