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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무신정권과 가마쿠라 막부는 무엇이 달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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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무신정권과 가마쿠라 막부는 무엇이 달랐을까
  • 전민일보
  • 승인 2018.02.07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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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메이지 유신을 통해 왕정으로 복귀하기까지 일본은 거의 칠백년 동안 막부가 통치한다.

가마쿠라, 무로마치, 그리고 전국시대를 거쳐 도쿠가와 막부까지 이른바 ‘칼의 나라’일본 모습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선진적인 한국사(?)가 일본에 영향을 준 것에는 군사정권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가마쿠라 막부의 초대 쇼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쇼군으로 실권을 장악한 해가 1185년이고 정식으로 ‘세이이 다이쇼군’에 임명된 것은 1192년이다. 그런데 그 보다 앞선 1170년 고려에 무신정권이 등장한다.

그리고 1196년 최충헌에 의한 4대 60여 년 간의 최씨 정권이 수립된다.

고려 무신정권과 일본 막부는 무엇이 같고 달랐을까. 당시 최씨 정권과 가마쿠라 막부에는 공통적인 대외 문제가 등장한다.

바로 몽고와의 전쟁이다. 그리고 두정권 모두 그로인한 내상으로 결국 종말을 맞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상황에 대처한 방식이다.

[고려사]에는 최충헌과 그 아들 최이가 거란이나 몽고와의 문제에 있어 대처한 방식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먼저, 최충헌은 국경에서 급보가 올라오면 “어찌 작은 일로 역마를 귀찮게 하고 조정을 놀라게 하는가?”라 꾸짖고는 보고자를 유배 보내버렸다.

국경을 지키던 장수들은 이렇게 한탄한다. “반드시 적병이 두세 성을 함락시킨 연후에야 급보를 보내는 것이 좋겠다.”그 탄식처럼 거란 군사가 침입했을 때도 개경에서는 아무런 대비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고려의 최정예 군사는 최충헌의 사병이었고 관군은 약골로 아무 쓸모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침략군과 제대로 된 전투를 할 수는 없다. 더욱 가관인 것은 명장이 등장하는 것을 경계했다는 사실이다.

조충이 거란군을 격파하고 개선했을 때도 최충헌은 그 공을 시기해 연회를 중단시켜버린다.

그리고는 연회를 따로 주최해 조충의 존재감을 지워버린다. 더 나가 조충이 서경에 머무르려고 했을 때도 반란을 일으킬까 걱정해 돌아오게 했다.

최충헌은 무신이었지만 국가의 안위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감도 보여주지 못했다. 중요한 것은 오직 자신의 권력뿐이었다. 그것은 몽고의 침입이 본격화한 아들 최이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다.

최이가 강화도로 천도하려 했을 때 야별초 김세충이 이렇게 힐난한다.

“송경은 태조 이래 대대로 지켜온 지가 2백년이나 됩니다. 성이 견고하고 군량미도 충분하므로, 마땅히 힘을 다해 방비해 사직을 사수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이곳을 버리고 장차 어느 곳에 도읍을 정하겠습니까?” 이에 최이는 김세충에게 ‘대안이 무엇이냐’ 물은 후 그를 처형해 버린다. [고려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최이가)기한 내에 출발하지 않는 사람은 군법으로 논하겠다.’라고 하였다. 또 사신을 여러 도에 보내, 산성과 해도로 백성들을 이주시켰다. 2영군을 동원하여 강화도에 궁궐을 짓도록 하고, 마침내 수도를 옮겼다. 이때 장맛비가 열흘이나 계속 내려 다리가 진흙에 빠지는 바람에 사람과 말이 마구 쓰러졌다. 달관과 양가의 부녀자들도 심지어 맨발로 짐을 이고 진채로 길을 떠났으며, 늙은 홀아비와 과부, 어린 고아와 자식 없는 늙은이들 중에서 갈 곳을 잃고 곡을 하는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최씨 정권은 전쟁에서 권력이 붕괴될 정도의 결정적 패배만 아니라면 현상유지가 최상이라 생각했다.

오히려 강감찬이나 조충 같은 영웅이 등장하는 것은 악몽이었다. 그럼에도 고려 무신정권은 종말을 맞는다. 고려 무신정권 붕괴 후 몽고의 비수는 일본을 향한다.

흔히 몽고 침략으로부터 일본을 태풍(가미가제)이 구했다고 한다.

그것은 절반의 진실이다. 가마쿠라 막부의 대응은 최씨 정권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달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몽연합군과의 전쟁을 통해 정권 안보가 아닌 국가 보위의 책임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100년간을 끝으로 종말을 고한 고려 무신정권과 가마쿠라 막부 몰락 후로도 535년 동안 막부가 정권을 담당할 수 있었던 근원적 차이는 바로 거기에 있다. 굳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말하는 것은 사족일 것이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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