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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항쟁 당시 그곳엔 수많은 연희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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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항쟁 당시 그곳엔 수많은 연희들이 있었다
  • 전민일보
  • 승인 2018.02.05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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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첫날을 영화 ‘1987’을 관람하며 시작하였다.

영화는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시작으로 6월항쟁에 이르기까지 그 해에 있었던 사건과 진실을 전하려는 사람들과 은폐하려는 사람들의 갈등과 긴장으로 잘 짜여진 대한민국 현대사의 변곡점이 된 슬프고도 뜨거웠던 이야기이다.

실제인물들과 사건기록들을 짜임새있고 극적으로 구성하여 영화를 보는 내내 그날의 거리에 나와 있는 듯 생생하게 다가왔다.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 경찰의 조사를 받던 대학생이 사망한다. 증거인멸을 위해 경찰은 시신화장을 요청하지만 그날 당직검사는 이를 거부하고 원칙대로 시신부검을 밀어붙인다.

쇼크사로 거짓발표하는 경찰, 부검소견은 고문에 의한 사망으로, 사건을 취재하던 기자는 ‘물고문으로 인한 질식사’로 보도한다. 형사 둘을 구속하는 선에서 사건을 축소시킨다.

교도소에서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교도관은 조카를 통해 수배중인 재야인사에게 전달하게 되고 이 소식은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다. 최초 검안의, 검사, 부검의, 교도관, 기자, 재야운동가, 성직자, 시민이 모두 6월 광장의 주인공이었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관심이 갔던 캐릭터는 유일한 허구 인물이자 여성인 연희였다.

교도관이었던 삼촌의 심부름으로 재야인사에게 비밀쪽지를 전해주는 대가로 워크맨을 손에 쥐고 행복해 하는 평범한 대학생이다.

연희는 우연히 쫓기던 시위대에 휩쓸려 섀시안으로 몸을 숨기는 과정에서 이한열을 만나고 잘생긴 운동권 오빠따라 동아리에 발을 들여놓는다. 동아리에서 광주 비디오를 보다가 울며 뛰쳐나오며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요?”라고 이한열에게 따져 묻는다.

불의에 저항하는 이들을 외면하던 연희는 신문 1면에서 최루탄에 쓰러진 이한열의 사진을 보고 달려간다. 그가 달려간 길의 끝에는 1987년 6월의 광장이 열려 있었다.

영화에서처럼 허구 인물인 연희 말고는 6월 광장의 한복판에 실제 여성인물은 없었을까?

수많은 인물들이 있었음에도 영화에서는 연희 말고는 없었다. 영화 전반에 연희의 비중이 낮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여성이 삭제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6월항쟁 당시 그곳엔 분명히 수많은 연희들이 있었다.

어떤 연희는 성당 종탑에 올라 민주항쟁을 알리는 타종을 하였고, 어떤 연희는 남영동 대공분실 앞에서 ‘박종철을 살려내라’며 시위를 벌였고, 어떤 연희는 박종철 사진을 들고 앞장서서 가두시위를 진두지휘하다 경찰에 붙잡혀 갔고, 어떤 연희는 머리에 삼베를 두르고 장례행렬에 앞장서서 행진했으며, 어떤 연희는 전경들에게 꽃을 달아주며 최루탄 추방을 외쳤고, 어떤 연희는 후배연희가 최루탄에 맞아 고통스러워 할까봐 섀시안으로 끌고 들어갔고, 어떤 연희는 스크럼을 짜고 독재타도 민주실현 가두행진을 준비하였다.

이처럼 사건마다 고비마다 앞장선 여성들의 활약이 넘쳐났음에도 영화에서는 비중있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비단 영화뿐이겠는가? 여성의 관점에서 본 6월항쟁을 다룬 영화가 밀도 있게 만들어진다면 ‘1987’을 다시 쓰고 싶다.

이윤애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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