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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난 양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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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난 양말
  • 전민일보
  • 승인 2018.01.31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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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양말을 신지 않는 사람이 많다. 한 겨울인데도 구두를 맨발로 신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젊은이는 양말목이 복사뼈 아래까지만 당도한 양말을 대부분 신는다.

양말을 신는 것이 발 건강을 유지하기 좋을성 싶은데, 멋을 우선으로 여기는 세태이다. 신체를 최대로 내보이려는 유행의 파고가 발까지 닥친 것이다.

큰아들이 고등학교 3년 동안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집에 올 때마다 짝 양말을 자주 신고와 이유를 물었다.

빨래 건조대에 양말을 널어놓으면 뒤바뀌거나 누군가 가져갈 때가 많다고 했다.

속이 상해 학부모 대표들이 교장 선생님을 찾아가 항의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듯이, 양말 도둑이 사회에 나가 절도범이 되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느냐는 논리였다.

학부모들 걱정과 달리 학생들 반응은 시큰둥했다. 짝 양말도 나름대로 패션이라는 것이다.

아들 녀석은 서른을 눈앞에 두고도 짝 양말을 즐겨 신는다. 고등학교 3년동안 잘 학습했기 때문이다.

이런 아들을 둔 덕분에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짝 양말에 대한 편견을 허물었다.

양말은 주로 한쪽 뒤꿈치가 먼저 떨어진다. 구멍이 크게 뚫린 것은 버리고 온전한 것은 잘 뒀다 짝짝이로 즐겨 신는다.

구멍이 작게 뚫린 것은 구멍이 커지기 전에 꿰매야 한다. 양말은 주로 내가 꿰맨다.

양말을 꿰맬 때 바늘이 작은 것을 써야 매듭을 작게 만들 수 있다. 매듭이 너무 크면 양말을 신을 때 마치 이물질을 밟는 것처럼 신경이 쓰인다.

신발에 모래 몇 알만 들어가도 발바닥 감촉이 예민해져 걷는 것이 불편해진다.

문제는 작은 바늘 귀에 실을 집어넣는 산을 몇 고비 넘겨야 한다.

다른 사람에 비해 노안이 빨리 왔고 평소 안구건조증이 심하다. 집중력과 인내심을 발휘하지 않으면 바늘귀에 실 넣는 것이 문고리 없는 문을 여는 것처럼 힘들다.

실 끝에 침을 적당하게 바른 뒤 끝을 꼿꼿하고 예리하게 세운다. 돋보기를 벗는다.

아주 가까운 거리는 돋보기가 시야를 오히려 가린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성구를 떠올리며 실 끝을 바늘귀에 집어넣는다.

단번에 집어넣는 일은 거의 없다. 적어도 서너 번은 감행해야 한다. 구멍 난 양말을 거꾸로 뒤집은 뒤 테니스공을 양말 속으로 밀어 넣는다.

테니스공을 구멍 난 곳에 대고 바느질을 하면 바느질이 쉽고 매듭을 작게 만들 수 있다.

그래야 양말을 신을 때 불편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꿰맨 양말을 자주 신다 보면 불편함에 예민해진 감각이 둔해진다.

구멍 난 양말을 꿰맬 때 양말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마취하지 않고 수술을 하니 고통이 작을 리 없다.

성성한 마을에 사는 살은 떨어져 나간 살을 다시 돋게 하려고 자기 살점을 선선히 내어준다.

양말은 바늘에 찔리는 아픔과 살점이 떨어져 나간 고통을 당하면서도 자기 것만 주장하지 않는다.

아픔과 고통을 기꺼이 함께 나누려고 한다.

구멍 난 양말을 꿰맬 때 양말의 성성한 살은 서로 배려와 희생을 올망졸망 베푼다.

양말은 우리 몸 가운데 가장 지저분한 발을 감싸고 있으면서 불평 한마디하지 않는다.

숨이 막히고 땀 냄새가 진동할 텐데 못마땅한 표정을 짓거나 불편한 내색을 하지 않는다.

당연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긴다. 자신을 어디에 둬야할지 처신을 잘 한다.

누구나 자기 분수를 잘 알아야 올바로 처신할 수 있다.

양말은 자신이 하는 일에 비해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 신고 벗은 양말은 냄새가 난다 하여 주인까지 냉대한다.

구멍 난 양말을 꿰매면서 세월을 절감한다. 돋보기를 끼고도 잘 보이지 않는 바늘귀는 나이 먹어가는 것을 자연스럽게 일러준다.

구멍 난 양말이 남은 생 더욱 집중하고 인내하라고 충고한다. 살다 보면 바늘에 찔린 것과 같은 아픔이 찾아올때 불평하지 말라고 한다.

네 살점 간절히 원하는 사람 있으면 떼어주라고 그런다.

현재 있는 자리에 만족하며 기쁘게 살라고 속삭인다.

우리 몸 가운데 어느 한 곳이라도 중요하지 않은 곳이 없다. 특히 발은 제2의 심장이라 할 만큼 아주 중요하다.

발을 보호하고 온도를 유지하는 역할을 양말이 한다.

양말을 자주 신다 보면 닳아지고 구멍이 나기 마련이다. 구멍 난 양말을 꿰매면서 깨우친 것이 참 많다. 살다보면 스승은 고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소한 사물일지라도 눈여겨보고 그가 말한 것을 세밀하게 들으면 우리를 깨우쳐주는 스승이 된다.

최재선 한일장신대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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