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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아침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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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아침의 단상
  • 전민일보
  • 승인 2018.01.19 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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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 새해 첫 날 아침, 새해 일출을 보기위하여 익산천 제방에 올라갔다. 지평선 너머 동쪽하늘을 우러러보았다. 서쪽하늘은 아직도 어두움의 장막에 휩싸여 있었지만 동쪽하늘은 발그레하게 물들고 있었다. 새해의 여명이 연보랏빛 베일처럼 아름답다. 연보랏빛 베일 사이로 연지를 붉게 바른 신부의 볼 같은 태양이 서서히 떠오른다. 드디어 무술년(戊戌年) 새해가 밝았다.

새해에도 더욱 정진을 다짐하며 문득 헬렌 켈러의 에세이를 떠올려보았다.

헬렌 켈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첫째 날에는 내게 삶의 보람을 느끼게 해준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 내가 눈을 뜨고 볼 수 있는 첫 순간 나를 어둠에서 구해준 설리반 선생님을 찾아갈 것이다.

그리고 친구들을 만나고, 남이 읽어주는 것을 듣기만 했던 책들을 읽어볼 것이다. 오후에는 들과 산으로 가서 예쁜 꽃과 풀들을 볼 것이다. 저녁이 되면 석양의 빛나는 황홀한 노을앞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릴 것이다. 그날은 한잠도 이룰 수 없을 것 같다.

둘째 날에는 동트기 전에 일어나서 밤이 아침으로 바뀌는 가슴 설레는 기적을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잠든 대지를 깨우는 태양의 장엄한 광경을 경건하게 바라보면서 세상을 두루 살펴볼 것이다. 낮에는 박물관과 미술관을 둘러보고 밤에는 영화관이나 극장을 가고 싶다. 또 영롱하게 빛나는 밤하늘의 별을 볼 것이다.

셋째 날에는 아침 일찍 큰길로 나가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싶다. 낮에는 오페라하우스에 가고 밤에는 도시한 복판에 나와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거리와 쇼윈도에 진열된 멋진 상품들을 볼 것이다. 집에 돌아와 눈을 감아야 할 마지막 순간에는 이 사흘만이라도 눈을 뜨고 볼 수 있게 해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영원히 어둠의 세계로 돌아가겠다.

헬렌 켈러의 간절한 소망처럼 나는 매일 아침 해맞이를 하곤 한다. 향리의 전원주택으로 이사한 이후 매일 아침 해맞이를 하기 위해 익산천 제방이 한눈에 들어오는 동쪽 창가에서 서성인다. 익산천 제방위의 하늘이 보랏빛에서 분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면 내 마음도 분홍빛으로 설레기 시작한다. 선명한 일출이 예고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의유당 김씨부인은 관북유람일기에서, 일출을 보면서 떠오르는 해가 그믐밤에 보는 숯불빛 같고 붉은 호박구슬처럼 곱다고 했지만 나는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 자애로운 어머니의 등불 같은 생각이 든다.

부지런하신 어머니는 등불을 들고 어둠을 깨워 당신의 세상을 밝고 따뜻한 빛으로 감싸주신다. 또한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헌신적으로 병사들을 치료해 준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등불도 떠올려본다. 크리미아 전쟁때 야전병원의 병상에 누워있던 부상병들은 등불을 들고 병실을 순회하던 나이팅게일의 등불만 보아도 병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떠오른 태양의 한줄기 붉은 빛이 유리창을 통과하여 테라스의 벽에 걸린 ‘봄나루’라고 쓰여 있는 공예품을 비춘다. 몇 해 전, 박씨를 심어 박이 열리고 그 박을 따서 바가지를 만든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 바가지에 ‘봄나루’라고 글씨를 써서 현판처럼 테라스 벽에 걸어두었다.

한 줄기 빛은 봄나루 현판을 지나 거실의 벽에 다가와 화위복원(和爲福原)이라고 쓰여있는 액자를 스포트라이트처럼 비춘다. 30여년 전 신혼선물로 받아 가훈으로 삼아 걸어두고 있는 액자이다. 빛은 다시 액자 아래의 벽면을 밝히고 있다. 나는 빛을 등지고 서서 손가락으로 하트 모양을 만든 후 벽면을 향했다. 벽면에는 선명한 그림자 하트가 그려진다.

선명한 그림자 하트를 바라보며 “새해가 밝았어요! 새봄이에요, 신춘원단(新春元旦)”하고 소곤거려 본다.

소현숙 전북도여약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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