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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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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 전민일보
  • 승인 2018.01.17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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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외출이다.”

주인이 목줄을 풀어주었습니다. 내 이름은 달콩이입니다. ‘알콩달콩’이란 말 들어봤지요?

누나와 싸우지 말고 알콩달콩 지내라고 원래 주인이 지어 줬습니다. 누나와 헤어져 이곳으로 온 지 석 달쯤 됐습니다. 한동안 엄마와 누나가 보고 싶어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새 주인과 식구들이 예뻐해 주는 바람에 잊고 지내지만, 불쑥 생각날 때가 많습니다.

몸이 아플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달포 전쯤, 설사를 심하게 하고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주인이 꿀물을 가져다주었지만, 아픔을 달게 해주지 못했습니다.

엄마와 누나에 대한 그리움이 아침안개처럼 피어올랐습니다. 주인을 따라 병원에 두 번이나 가서 주사를 맞고 약을 먹고서야 나았습니다.

몸이 아프니까 생각이 약해지고 꿈을 꿀 수 없었습니다. 언젠가 엄마한테 돌아갈 수 있다는 꿈 말입니다.

이틀 걸러 한번 꼴로 집배원 아저씨가 다녀갑니다.

우편물 대부분은 주인 이름자 끝에 ‘시인님’이란 말이 붙어 있습니다. ‘시인님’이 무슨 말인지 몰랐을 때, 우리 주인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쓰기 힘들고 부르기 불편하게 이름을 길게 지었다고 단정했습니다. 우리 주인이 쓴 시 가운데 내 이름이 들어간 것이 있어 소개하려고 합니다.

아버지 안과 모시고 가는 길에 입맛 잃은 달콩이 함께 병원에 데리고 갔다. 집사람 오는 길에 콩나물 1,000원짜리 한 봉지 사 오랬다.

팔순 아버지 안과 진료비 1,500원. 달콩이 주사 처방 약 조제 사료 포함 3만 8,670원. 아버지 달콩이 머리 쓰다듬으시며 “이놈아! 아프지 말아야지.” 달콩이 시선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자꾸 안으로 말아 넣었다.

마트에 들러 1,000원짜리 콩나물 한 봉지 달랑 사 들고 차에 올랐다. “이놈아! 아프지 말아야지.” 아버지 이 문장에 되돌림 표 붙여 노래 멎지 않으셨다.

모서리 닳아 완곡해진 갈 볕 달콩이 옆에 누워 집에까지 따라왔다. 차에서 내린 달콩이 언제 밥맛 잃었냐는 듯이 뒤따라온 갈 볕 알콩달콩 손잡고 뛰었다.

“이놈아! 아프지 말아야지.” 「(“이놈아! 아프지 말아야지”의 뒷말」전문)

맘대로 될지 모르지만, 아프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우리 주인은 아침에 바람처럼 나갔다 자정 언저리쯤 파김치가 되어 돌아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그렇게 바쁜지, 좀 일찍 귀가할 수 없는지 참 안쓰럽습니다.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나랑 함께 나갔다 오자고 했습니다. 신이 났습니다. 집 밖으로 나서자 바람이 다디달게 불었습니다.

목적지는 묵방산 아래에 있는 원각사가 분명합니다. 반사경으로 원각사 방향으로 난 길을 먼저 확인했습니다. 차가 인정 없이 속력을 내기 때문입니다.

길을 가다 꽃을 보았습니다. 그 꽃은 메마르고 비틀려서 향기 한 푼 나지 않았습니다.

눈꺼풀이 풀리고 추위에 부르터서 절망으로 견인될 처지였습니다. 선명했던 색채가 가난해져 고물상으로 실려 갈지 몰랐습니다.

잠시 그 꽃의 영화로운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지나는 사람들이 발을 멈추고 바라보았겠지요? 꿀벌이 몰려들어 온몸 간지럽게 애무했겠지요? 그때가 한때였다면, 지금도 꽃은 다른 한때를 살고 있습니다. 젊음만이 생애가 아니니까요.

몇 개 달리지 않은 나뭇잎이 위태롭습니다. 차마 내려놓지 못한 것으로 인해 우리 삶이 간당간당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를 갖고 나면 둘을 가지려는 탐욕의 끈을 끊지 못하며 삽니다. 우리 생애의 나무에 가장 위태로운 것은 탐욕의 잎입니다.

허공에 길이 있습니다. 그 길로 차가 많이 다닙니다. 차를 타고 먼 곳으로 여행하고 싶습니다.

어느새 내 안에도 탐욕이 음울하게 자라났나 봅니다. 주인과 함께 외출하며 느낀 행복이 금방 시들해졌으니까요.

꽁꽁 언 저수지에 아침 햇살이 고요하게 미끄러집니다. 눈이 부십니다. 살다 보면 눈부신 것이 햇살뿐이겠습니까? 킁킁 앓다 아픔 견디고 얻은 흉터가 눈부시고, 젖은 슬픔을 말리고 웃는 웃음이 눈부십니다.

한해가 황망하게 가고 어김없이 새해가 오는 것, 모래언덕 같은 세상 어딘가에 샘물이 솟고 있는 것이 눈부십니다.

어렵고 힘든 일을 겪을 때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 한마디가 눈부십니다. 눈부신 것은 우리 영혼을 잠들게 하지 않으니까요.

경고장이 눈에 띕니다. “전기 울타리, 감전 위험, 접근금지”이 푯말은 수신자가 멧돼지지만, 유쾌하지 않은 문장입니다.

전기 울타리로 멧돼지 출입을 원천봉쇄할 수 있다는 발상이 수심을 깊게 만듭니다. 어린 자식을 곯게 할 수 없어 분유를 훔친 엄마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이런 모정을 멧돼지도 가지고 있습니다. 모정은 감전을 무릅쓰고 전기울타리를 뛰어넘습니다. 건강한 엄마마음으로 세상과 사물을 보면 사랑이 싹틉니다. 엄마는 사랑이니까요.

山門에 이르렀습니다. 돌멩이 천지입니다. 대숲에서 竹香이 군락을 지어 몰려오다 몇 가닥 돌부리에 걸려 넘어집니다.

다시 일어나 山門밖으로 걸어갑니다. 우리 생애의 길에도 돌멩이가 깔려 있습니다.

살다 보면 맥없이 돌부리에 미끄러져 넘어질 때 있겠지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일어나 흙먼지 털고 다시 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재선 한일장신대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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