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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五味)가 깃든 연말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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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五味)가 깃든 연말 결산
  • 전민일보
  • 승인 2017.12.22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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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가 지나가는 강물의 하구에 서서 시간의 여울머리로 거슬러 올라가는 범선 한척 띄우고 저인망을 던져봅니다.

건져 올린 그물 속에서 정말 다행히도 진주조개 한 알 발견했습니다. 진주를 생성하는 그 신산한 고통은 '빛나는 보석을 생성하는 아름다운 꿈'이었기에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진주조개에 어려 있는 삶의 문양들을 들여다보며 한해를 되돌아보았습니다.

해솟음달의 첫날, 참으로 고요한 마음으로 범선 한 척을 한해의 항로에 띄워놓고 순항을 기원했습니다.

시샘달입니다. 입춘이 지났지만 아직은 겨울이 머물러 있는 숲에 들어가 풀꽃들의 묘역을 참배했습니다. 꽃다운 영령들이 잠들어 있고, 묘비명만 눈에 가득 들어옵니다. 가신 님들은 말이 아무 말이 없었지만 강물이 풀려 난류 흐르는 날, 새 풀잎의 미소로 다시 오시리라 믿으며 다시 한 번 그 꽃다운 영령들의 이름을 불러보았습니다.

물오름달입니다. 빈들에 올라서니 물오른 나뭇가지 등대에는 황금의 꽃등 하나가 걸려있었습니다. 산수유가 노오란 꽃망울을 맺고 있었어요. 그 부드러운 화심은 뜨거운 화심으로 타올라 연애(煙靄, 아지랑이)로 심연이 아롱지고 있었어요.

잎새달입니다. 초록빛의 유혹이 범선을 멈추게 합니다. 푸른 비단이 펼쳐있는 언덕을 넘어 봄의 순례자인양 청마를 타고 빈숲에 들던 그 날, 숲속 깊은 골짜기에선 샘물이 솟아오르고 연분홍 진달래꽃이 활짝 피어났습니다.

푸른달입니다. 범선은 따뜻한 물이 솟아오르는 곳에서 정박했습니다. 노천탕에 몸과 마음을 담그고 오월의 햇살을 온몸에 휘감아 보았습니다. 댓잎에 햇살이 반짝이고 열일곱살난 아이의 금낭화같은 얼굴에선 땀방울이 흘러내려 햇살에 반짝입니다.

누리달의 여울목은 호수처럼 잔잔합니다. 청평 가람가에서 영지(影池)를 발견했습니다. 영지는 닦아야 할 마음을 오롯이 비춰주고 있었어요.

견우직녀달입니다. 범선은 광한루에 가서 오작교를 바라보며 멈추었습니다. 오작교를 건너다 돌아본 밤하늘에 선 견우직녀별의 기쁜 해후의 눈물이 영롱했습니다.

타오름달입니다. 타오르는 태양을 뒤로 하고 계곡에 머물렀습니다. 계곡에서 탁족을 하다가 상류로 올라가 종이배를 만들어 띄웠습니다. 아이는 계곡아래에서 사랑의 엽신을 발견하고 계곡 상류를 향하여 두 손을 흔듭니다. 그 날 이후 그 종이배는 딸아이의 기억 속에 오래 오래 정박했습니다.

열매달입니다. 백일동안 연습한 춘향전 사랑가를 열매달의 무대에서 공연했습니다. 사랑가를 부르면서 우리의 멋과 가락을 온몸에 느낍니다. 어허둥둥, 내 사랑이야, 아매도 내사랑이로다. 아아, 아매도 내 사랑입니다.

하늘연달입니다. 범선을 단풍나무에 매어두고 짧은 기차여행을 했습니다. 황금의 들녘을 지나 정읍역에 도착하니 정읍사의 여인이 맞아줍니다. 천년의 광음이 흘러도 변함없는 석상이 되어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비취오시라, 비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귀가 길의 마한.백제의 고도에는 사리장엄이 천년의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미틈달입니다. 만추의 신전에서 미네르바의 탄생을 보았습니다. 여신은 주피터의 철갑을 두른 이마를 뚫고 탄생하여 백옥의 주렴이 달려있는 화관을 쓰고 지(智)의 미(美)를 온누리에 선포했습니다. 이윽고 화려한 나래를 펼친 극락조의 모습으로 바뀌어 창공을 향해 비상했습니다. 게발선인장이 단단한 철갑처럼 보이는 머리끝에 꽃망울을 맺고 있다가 봉오리가 서서히 부풀더니 붉은 화관모양의 꽃을 피웠던 것이어요. 봉오리가 만개하니 극락조의 모습과도 닮아갔습니다.

매듭달, 이제 범선은 11개의 여울목을 지나 여울머리에 이르렀습니다. 삶의 물결이 소용돌이치며 도도히 흘러내립니다. 여울머리 소(沼)에서 물을 길어 담았습니다. 삶터의 일상으로 돌아와서 다기에 물을 부어 오미자 차 한잔을 만들었습니다.

올 한 해 삶에도 짠 맛의 움츠림, 매운맛의 숨 가쁨, 신맛의 오싹함, 쓴맛의 놀라움 등이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었지만 그 오묘한 맛의 치유력은 놀랍게도 감미로움으로 남아 이렇듯 다음해를 향하여 항해할 무한한 힘을 선물해줍니다.

소현숙 전북도여약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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