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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는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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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는 ○○이다
  • 전민일보
  • 승인 2017.12.20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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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학과 1학년 강의 가운데 교양필수인 ‘인문고전 읽기’가 있다. 이 시간에 ‘공자’가 쓴 『논어』를 강독한다. 강의는 공자가 한 말씀을 간호현장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문답식으로 하고 평가는 논리적인 글쓰기를 통해서 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야! 너에게 안다는 것에 대해 가르쳐주랴?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 (위정 편) 이 말씀을 예로 들면, 이 말씀을 간호현장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에 대해 논하라는 형식으로 문제를 내 무감독으로 시험을 치른다.

이 강의는 수업시수가 한 시간이다. 학생 55명을 대상으로 한 시간짜리 강의를 하려면 강의시간과 강의분량을 잘 조절해야 한다. 감각적으로 나는 모든 학생과 눈을 마주쳐야 강의에 집중할 수 있다.

단 한 학생이라도 해찰하거나 졸면 내 오감의 문이 저절로 닫혀버린다. 다행히 이런 체질을 익히 알고 있는 학생들은 대체로 강의에 빠져들려고 애를 쓴다.

여러 강의 가운데 ‘논어’를 강의하는 것이 가장 부담스럽다.

내가 공자 말씀을 깊이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그 말씀을 실천하며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강의 때마다 『논어』를 가르치는 교수자가 아니라, 진행자로 여겨 달라 하며 함께 배우려 한다고 한다. 사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지금까지 ‘논어’를 강의하고 있다.

나는 학생들을 師友로 여기고 있다. 공자는 제자를 師友라 했다. 나는 그들을 평소 눈여겨보며 그들에게서 배울 것을 찾는다.

그들은 젊다. 이순을 눈앞에 두고 시의 가마솥에 사랑을 끓이며 그리움의 불을 지필 수 있는 것은 이들을 보며 산 덕분이다. 우리 학과 남학생과 사귀는 여학생이 있다.

이들이 페이스북에서 주고받는 사랑표현은 순진 무식하고 천진 난폭하다. 아름답기 그지없다.

오늘 종강하였다. 학생들에게 “간호사는 ○○○이다. 왜냐하면 ∼하기 때문이다.”란 문장형식으로 각자 발표하게 하였다. 요나는 “간호사는 친구이다. 왜냐하면, 환자를 친구처럼 잘 대해야 하기 때문이다.”고 했다. 윤주는 “간호사는 공자.”라고 했다. 공자가 『논어』에서 한 말씀을 간호현장에서 그대로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밖에 “땅, 양말, 새벽, 신발 끈, 심장, 나무, 우산, 거울, 엄마, 난로, 집, 옷, 안경, 빛, 형제, 등대”와 같은 단어를 말하기도 하고 “이음줄, 가로등, 횃불, 달걀 껍데기, 들꽃, 100원짜리 동전”이라 말한 학생도 있었다.

오휘는 “오늘 하루”라는 시어 같은 어휘를 말했다. 간호사는 ‘오늘 하루’매일매일 환자에게 최선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수하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라는 뜻인 ‘카르페디엠(carpe diem)’이란 말을 썼다.

뜬금없이 주연이가 “간호사는 최재선 교수님이다. 왜냐하면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행복해 보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몸 구석구석에 벌집처럼 자리 잡은 피로감이 일시에 사라져 나와 무관한 것처럼 느꼈다. 주연이가 비록 의도적으로 아첨에 호소하는 오류를 범했다 할지라도, 잠시 이 말을 신뢰하며 나 자신을 위로하였다.

특별히 떠오른 말이 없어 비록 지나가는 말로 했다 할지라도, 또 다른 공자가 나에게 충고한 말씀으로 여기기로 했다.

내 생애 어떤 바람이 몰아쳐도 부동의 깃발로 서 있으라는, 내 생애 안개가 자욱하게 낄지라도 가는 길 돌라서지 말라는, 내 생애 어둠이 아무리 두껍게 내려앉아도 한 줌 모닥불로 타오르라는 가르침으로 무릎 꿇고 경청하였다.

오늘 종강하면서 또 다른 공자를 한 분 뵈었으니 지극히 나는 행복한 학생아닌가.

고덕산 위에 만월에 가까운 달이 겸허하게 피어 있다. 저 달빛 아래 낮아지고 널찍해져야지. 맑아지고 둥글어져야지. 내 안에 자라는 탱자 울타리 한 그루씩 베어내야지. 밤늦은 귀갓길이 가직하고 환하다. 달빛이 거실까지 따라왔다.

최재선 한일장신대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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