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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엔 백록담이, 백두산엔 천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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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16  10:3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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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된 다이애나 스펜서는 승마교관이었던 제임스 휴이트 소령과 밀애를 즐겼다. 그런데 제임스 휴이트가 신문과의 인터뷰는 물론 책 발간을 통해 둘 사이의 관계를 밝히게 된다. 이 때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제임스 휴이트를 비난했다.

사문화된 상태이긴 했지만 왕실법에 의하면 그의 행위는 교수형 감이었다. 실제로 그 부분을 언급한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제임스 휴이트에게는 도덕적 비난 외에 그 어떤 처벌도 없었다. 궁금하다.

영국인들은 왜 적용하지도 않는 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사문화된 법률이 존재하는 것과 아예 없는 것의 차이가 분명 있기 때문이다.

술자리에서 친구가 푸념을 한다. 직장 동료가 검찰에 구속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친구는 자신의 일처럼 너무도 억울해했다. “본래 수사 대상이던 부분에서 아무런 문제가 보이지 않자 그 사람의 모든 행적을 조사해 죄를 만들어버렸다. 세상에 이런 경우가 어디 있나?”

이른바 별건수사다. 공관병에 대한 부인의 갑질 논란 끝에 구속된 4성 장군의 구속사유도 갑질이 아니다.

이 땅에는 분명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말을 무색하게 할만한 고귀한 영혼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별건수사도 털어서 먼지 안 나도록 행동하지 못한 사람들의 당연한 귀책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이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조금의 흠과 하얀 거짓말 그리고 순간의 유혹에 대면해서 살아가는 소시민이다.

그런 그들에게 먼지 하나 없이 살지 않으면 언제든 감옥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이 별건수사다. 이것은 그대로 권력에 의한 표적수사로 이어질 수 있다.

권력이 특정대상을 향해 ‘털어서 먼지 날 때까지’조사해 만든 죄는 그런 점에서 정의를 넘어서는 섬뜩함 그 자체다. 그것은 또한 민주주의의 핵심인 절차적 정당성을 무력화시킨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핵심문제에 직면한다.

실체적 진실과 절차적 정당성 사이에서 괴리가 생길 때 우리의 선택은 어떠해야 하는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성철 스님은 생전 많은 화두를 던졌다.

그 중에서도 한국 불교의 중요한 두 개의 맥에 대한 그의 견해는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있다.

그는 오랜 기간 내려온 한국 선종의 수행방법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다. 성철은 자신의 저서 [선문정로(禪門正路)]를 통해 남종선의 조사 육조 혜능의 사상은 돈오돈수(頓悟頓修)라며 보조국사 지눌의 돈오점수(頓悟漸修)를 비판했다.

어리석은 내가 보기에 ‘깨달아 부처가 되면 더는 수행할 것이 없다.’는 돈오돈수는 논리적으로 명쾌하다.

그것은 결국 ‘더 수행할 것이 있다면 그러한 깨달음은 완전한 깨달음이 아니며 따라서 부처도 아니다.’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런데 보조국사 지눌은 왜 돈오점수를 얘기한 것일까. 지적인 이해를 뜻하는 ‘돈오’와 개인적 수행을 뜻하는 ‘점수’는 원리주의적인 선종 교리에서 보면 교종을 탈피하지 못했다는 공격의 빌미를 제공한다.

그에 대해 지눌은 이렇게 얘기한다. “태양이 떠도 겨울 내내 쌓였던 눈이 한 번에 녹는 것은 아니다.”또 이런 설명도 한다. “어린 아이가 감각기관을 갖추고 태어나지만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려면 어른이 되어야 하는 것과 같다.”

이상적인 민주주의는 절차적 정당성을 가지고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외람되지만 내 소견으로는 이 과정에 이르는 길은 돈오점수에 가깝다. 지눌이 바라본 당시 고려의 선불교는 치선(癡禪) 상태였다. ‘지견(知見)은 사라진 공허한 침묵만이 깨달음으로 포장된 어리석은 선객’고려에 지눌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원효나 의상이 이룩한 교종 계열의 역사는 단절됐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당시 원효에 대한 연구와 평가가 활발했던 것은 본국인 고려가 아닌 일본이나 중국에서였다.

제임스 휴이트와 영국의 사문화된 법률, 별건수사와 절차적 정당성 그리고 지눌과 돈오점수까지 생각의 꼭지를 던져준다.

그 관계 속에서 나온 모든 결과물은 과연 완벽한가?

한라산엔 백록담이, 백두산엔 천지가 있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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