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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세상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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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세상엔
  • 전민일보
  • 승인 2017.11.03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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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 어렵고 믿기도 싫은 일들이 수시로 뉴스를 장식한다.

자식이나 친구, 친구 부모도 못 믿을 세상을 사는 우리는 대체 누구인가. 무엇엔가 홀려 혼도 의식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재산 없음에 감사하고 손자, 손녀없음이 다행이라 할 만큼 어이없는 일들이 안타깝지만, 길이나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고만고만한 아이들은 여전히 어찌 그리 다 예쁜지.

남편도 같은 마음인지 그런 애들과 마주칠 때면 자연스럽게 입꼬리가 올라가며 한 마디라도 붙여보려 애를 쓰는 눈치다.

그럴 때마다 내가 옆구리를 쿡 치곤한다. 큰일 난다고, 그래도 같은 아파트에서 산 지 십 년이 되어가니 꼬마때 보았던 아이가 중고등학생이 되어있는 것을 보면 마치 우리 아이 크던 것 같이 대견하고 흐뭇해서 같이 쳐다볼 수밖에 없다.

인사라도 꾸벅하면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은 것을 애써 참는다. 그게 여학생일 경우 더구나 생각도 말라며 남편한테 주의를 몇 배로 준다. 어디 이런 일뿐인가.

우리가 아니면 금방이라도 나라에 큰 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위협 아닌 위협을 주는 위정자, 그 위협과 불안을 속 시원히 없애지도 감싸지도 못하는 또 다른 위정자들에 맘 편하지 못하다.

큰 힘 들이지 않고 큰돈 벌려는 사람들의 갖가지 속임수도 사회 곳곳에서 펼쳐져 못 믿을 세상의 끝은 어디인가 싶은 회의감과 두려움에 고개 저을 때가 잦다.

그러나 주위를 돌아보면 괜찮은 일도 있다는 것이 또 살만한 세상이라는 이율배반적인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며칠 전 통장정리를 하다가 한OO이라는 이름으로 5천 원이 입금된 것을 보았다. 아, 그 친구가 이런 이름이었구나. 내가 사는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하는 마음에 터지는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추석을 전후해서 지루하게 이어진 휴일과 상관없는 관광지 우리 사무실은 매일 방문객의 문의로 바쁨이 배가될 때였다.

그날도 원하는 곳까지 걸리는 시간과 차량 이용 가능 등 수없이 되풀이되는 물음에 지쳐있을 즈음 부부로 보이는 젊은이가 현금이 필요한 문화재 관람료 때문에 난감해하며 계좌번호와 함께 필요금액을 빌려주면 폰뱅킹으로 송금하겠다고 했다.

다정한 모습이 꼭 우리 아들 며느리 같아 선뜻 내주었으나 문제가 생겼는지 송금이 안 된다며 쩔쩔매기에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고 구경이나 잘 하고 가라했다.

그 뒤로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통장을 보고는 마치 횡재라도 만난 듯, 부자라도 된 듯 그렇게 고맙고 뿌듯할 수가 없어 전화번호라도 물어두지 않은 것이 몹시 아쉬웠다.

그녀는 자신을 콩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실지로 잘 익은 두부콩같이 동글동글한 모습과 반질반질 윤기 도는 얼굴이 정말 콩을 닮았다.

콩에 대한 구술 또한 콩이 통통 튀다가 또르르 구르는 것 같이 재미있게 이어나갔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콩 섞은 밥이 아니면 먹지 않고 콩 반찬이 빠진 도시락은 갖고 가지 않아 부모님께 야단을 맞을 정도였다고 했다.

그런 그녀가 두부 공장 큰아들과 결혼해서 두부 사업으로 잘 나갈 때 모 대학 교수의 유전자변형 식품에 대한 폐해 강의를 듣게 된다.

그 후 바른 먹을거리에 대한 투철한 철학이 자리 잡은 그녀가 수입 콩 두부로 잘 나가는 공장을 그 몇 배 원가의 토종 콩으로 바꾸는 과정은 일종의 전쟁이라고 했다.

수입 콩 지역대표 남편을 우리나라를 침범한 일본인으로, 본인은 그를 물리치려는 독립군으로 생각하며 싸웠다고 하니 그럴만하다.

치열한 싸움에서 기어코 이긴 후 토종 콩만으로 식품을 개발하고 이문을 남기기보다 바른 먹을거리를 더 많이 알리고 보급하고 싶은 마음에 또 다른 일을 벌였다. 개발 식품에서 얻은 이익금을 털어 넣는 식으로 우리 농산물로만 조리한 식당을 연 것이다.

미소로 맞이하지만, 바른 먹을거리에 대한 고집스런 본인의 철학은 단호하게 펼치고 있는 그녀를 만난 것 또한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이유가 된다면 혹 누군가 어이없다 할까?

이용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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