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칼럼
니편 내편
전민일보  |  webmaster@jeonmin.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10.12  10:14:54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미국, 일본, 중국, 그리고 러시아는 물론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할 수 있다. 전제는 그들은 객체라는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객체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주체는 단일하다는 점이다. 다양한 방법론의 차이가 목표를 바꾸진 못한다. 하지만 원론이 그렇다고 해서 현실이 꼭 그렇진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약자의 경우다.

을과 을의 분쟁, 분할통치(Divide and Rule)와 같은 것들 모두가 강자의 의도에 최적화된 맞춤형 분열 모델이다.

아일랜드 독립영웅 마이클 콜린스(Michael Collins)나 백범 김구는 영국이나 일본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것이 아니다. 그들을 죽인 것은 그들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었던 동족이었다. 한국독립운동사의 분파가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정도였다고 생각하는가.

노론과 소론, 기호파와 서북파는 식민지 조선의 독립을 얘기하는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살아 있었다.

민족의 분단에 강대국의 책임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 내재적으로도 분열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이긍익은 [연려실기술] 의례편에서 이런 말을 남기고 있다.

“동서 당파가 나눠진 뒤로 이편 저편의 기록에 헐뜯고 칭찬한 것이 서로 반대로 되어 있는데, 편찬하는 이들이 한 편에만 치우친 것이 많았다. 나는모두 사실 그대로 수록하여, 뒤에 독자들이 각기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것에 맡긴다.” 이긍익의 얘길 좀 더 들어보자.

“잠곡(潛谷) 김육(金堉)이 [명신록(名臣錄)]을 편찬하면서 지천(遲川) 최명길(崔鳴吉)을 싣지 않고 계곡(谿谷) 장유(張維)를 실었더니, 용주(龍洲) 조경(趙絅)이 편지로 그 부당함을 책하였다. 직접 귀로 듣고 눈으로 본 같은 시대의 사실인데도 듣고 본 것이 서로 달라 넣고 빼기가 어렵거든, 하물며 오랜 세대가 흐른 뒤에 전해 들어서 그릇되기 쉬운 것임에랴.”

이긍익이 살았던 시대에만 유효한 얘기인가. 내겐 지금 우리 곁에서 일어나는 사안에 대한 통찰로 느껴진다.

조선의 당파와 대한민국의 정당은 과연 무엇이 얼마나 다른가.

누군가는 그러한 비교 논의 자체가 내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 비판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이해가 어렵다. 같은 기준이 여야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있는 마땅한 논리가 내겐 없기 때문이다.

논문표절에 대한 기준은 물론 담배 소비세 인상에 대한 논의의 틀은 도대체 어떤 설명이 가능한가. 개인적으로도 곤혹스러운 것이 많다.

어떤 사안에 대한 찬반은 물론 보는 신문과 개인에 대한 호불호가 왜 일관적이어야 하는가.

정당인이라면 그 정당의 절차에 따라 당론이라는 것이 있으니 그렇다 이해한다지만 개인이 그래야할 이유가 무엇인가.

사회의 논쟁적 사안에 대한 의견표명은 자유롭지 않으면 안 된다.

성매매에 대한 도덕적 논의와는 별개로 사회에서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야할 것인가의 문제는 다양하게 논의될 수 있다.

그것은 내가 대학 1학년 교양과정에서부터 철학적 토론의 주제로 다뤘던 내용들이다.

개인이 자신의 도덕성을 관리하는 것과 사회가 그 구성원의 도덕성을 관리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일 뿐 아니라 대단히 위험하다.

한국 사회는 과연 열린사회인가. 그렇다면 금기가 없어야 한다. 과연 우리에겐 금기가 없는가.

용기는 죽음이나 불이익에 관한 것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때로 그것은 명예와 기대 그리고 소중한 것들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대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 글을 보고 멀어져간 사람들을 보면서 때로 생각한다. 그것은 반성일 수도 있고 확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난 내 글에 대한 책임을 기꺼이 안고 갈 것이다. 이제 개인적 얘기다.

참으로 조심스럽다. 에밀 졸라와 폴세잔의 깨어진 우정을 얘기하지 않더라도 한 평생 일관되게 애정과 신뢰를 간직한다는 것이 갈수록 어렵게만 다가온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니편 그리고 내편. 사회적으로만 그것을 내게 요구한 것은 아니다. 굳이 강요한다면 어찌하겠는가. 에밀 졸라와 폴 세잔은 끝내 화해하지 못했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전민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여백
인사말연혁찾아오시는길고충처리인독자권익보호위원회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동부대로 762  |  대표전화 : 063)249-3000  |  팩스 : 063)247-6116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윤희
등록번호 : 전북 가 00008   Copyright © 2017 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