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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민일보
  • 승인 2017.10.11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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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연휴가 솜사탕처럼 녹고 이제 막대기만 남았습니다.

이 기간에 고향을 찾은 사람도 있을테고 멀리 여행을 떠난 사람도 있었겠지요?

저도 몇 군데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우선 팔십 고개에 췌장암을 앓고 병석에 누워계신 숙부를 만나고 왔습니다.

큰아버지께서 6.25 때 전사하셔서 아버지께 남은 유일한 형제입니다. 제 손을 잡고 많이 우시더군요. 수액 외에는 아무것도 드시지 못한 숙부께서 겉절이 배추김치가 먹고 싶다고 하시자 숙모께서 눈물을 펑펑 쏟으셨습니다. 살다 보면 살다가 보면 매 순간이 어쩌면 우리 삶의 가장자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두번째 여행지는 제가 사는 마을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화심소류지입니다.

묵방산에서 흘러내려 온 물을 품 안에 안고 있습니다.

물이 맑고 깨끗하여 수질이 좋은 것을 둘째로 치면 분명 속상하다고 할 것입니다.

운이 좋은 날은 수달을 만날 수 있고 솔바람이 빚어내는 윤슬이 눈부셔서 발목을 붙잡기도 합니다. 길섶에 핀 꽃은 가짓수가 하도 많아 지천이 그냥 꽃밭입니다.

이곳을 다녀오고 나면 시들시들해진 시심에 생기가 돌아 풋 시나마 건져오곤 합니다.

세 번째 여행지는 아중천변입니다. 밤 깊은 시간 인적이 드문 틈새를 뚫고 어둠을 고요하게 밟으면 평안해집니다.

연휴 기간인 9월 30일부터 오늘까지 쓴 시 대부분이 이곳을 걸으며 낳은 것입니다. 「살다 보니 살다가 보니 47」 ‘눈여겨보니’, 48 ‘달의 웃음’, 51 ‘싹수 파래지다’, 52 ‘멈추고 나서 비로소’, 55 ‘착각’, 56 ‘歸生’, 58 ‘비에 젖어보라’, 59 ‘아멘’이 바로 그렇습니다.

네 번째 극장으로 여행을 했습니다. 영화 ‘남한산성’을 보았습니다.

위정자나 리더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깨닫게 했습니다.

정치는 정치인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가장이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도 정치입니다.

그런데 정치인이 정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에 정치를 권모술수와 같은 궤짝에 든 혐오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대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민심을 잃은 정권은 서리 맞은 호박잎과 같습니다.

구성원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리더 역시 초록동색이겠지요.

끝으로 제게로 여행을 자주 했습니다. 심장까지 걸어가 심장박동수를 세기도 하고 심장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잠시도 멎지 않고 뛰어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심장을 만난 뒤 가슴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가슴의 온기가 식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구했습니다.

아픈 사람을 보면 같은 무게로 통증을 느끼게 해주고 눈물이 마르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끝으로 저 자신을 최대로 줄여 혈관에 흐르는 피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피가 굳거나 멈추지 않고 흘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긴 연휴가 솜사탕처럼 녹고 이제 막대기만 남았습니다. 이제 그 막대기를 길게 뽑아 늘려 지팡이로 삼아야겠지요. 그리고 다시 일상의 늪으로 빠져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재선 한일장신대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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