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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못하는 것도 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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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못하는 것도 해볼 만하다
  • 전민일보
  • 승인 2017.09.26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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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여섯 권이나 내면서도 ‘겨우 이 정도인가?’하는 회의가 들었다.

남들은 멋지게 표지 디자인을 하고, 제목이나 글씨체도 독특하게 내놓던데, 나는 항상 이 모양인지 자괴감마저 든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하던 일을 그만둘 수는 없지 않은가. 슬그머니 변명이 떠올라 오늘의 화두로 삼는다.

‘잘 못하는 것도 해볼 만하지 않은가?’ 나는 지금까지 이 생각은 하지 못했다. 꼭 남보다 잘하는 것을 찾아서 몰두하려고 했다.

그래야만 경쟁력이 있을 거로 생각한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무역의 비교우위론이다. 하나 잘하는 것을 하는 것도 좋지만, 잘 못하는 것이라고 포기할 게 아니다.

내가 좋아하면 그만 아닌가. 결과를 따질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잘 쓴 글, 잘 제본된 책만을 읽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실력으로 책을 내다니, 나라고 못 할 것도 없네.’라는 생각이 독자에게 들었다면, 장차 또 한 사람의 작가를 탄생케 하는 자극이 되는 일이다.

내가 쓴 역사 수필이 체험 없는 글이라고 비난을 해도 어쩔 수 없다. 글을 읽고 역사를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으며, 새로운 역사관을 갖는 데 도움이 되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꽃과 나비, 그리고 계절을 쓰는 일에 싫증이 났다.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

잘 모르는 분야, 생소한 길을 가려고 한다. 철학과 윤리를 소재로 수필을 쓴다면, 독자가 환영하지 않을 것이다. 짧은 글, 편한 내용을 추구하는 시대의 요청을 거스르지 말아야 하는데.

그래도 내가 하고자 하면 하는 것 아닌가. 격이 떨어진다고 비난을 해도 친구들과 주고받은 카톡의 사연을 소재로 활용하고 싶다. 하도 돌고 돌아 원조를 찾아 양해를 구하기도 어려워졌다.

올겨울엔 십여 년 전에 배우다 그만둔 ‘솟대’를 깎고 싶다. 스무 개 정도 만들어 선물도 하고 거실에 세워놓았으면 한다. 잘못 만들면 어쩌랴. 못하는 것을 해보는 것도 괜찮지 싶다. 스스로 좋아하고 즐기면 그만 아닌가. 동료 교사가 은퇴하고 인두화 만드는 공방을 차렸다는데, 염탐한 뒤 함께 배우자고 해볼까?

슬며시 욕심이 생긴다. 소설을 한편 써보면 어떨까 하고. 처음엔 콩트, 그리고 단편소설을 쓰고 마지막으로 장편에 도전하려 한다. 어머니 얘기를 써볼까? 《토지》나《혼불》의 축약본 정도의 분량으로 기획하고 싶다.

가능할 것인지 여부는 문제가 아니다. 해본다는 데 의미를 두며, 잘 안된들 실망할 이유가 없다. 완성이 되면 신춘문예에 출품하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마지막 도전이 될지는 몰라도 그림도 그리고 싶다. 이런 것을 젊은이들은 노욕(老慾)이라 할 텐데, 그러면 어쩌랴.

그들은 그들이고, 나는 나인데. 그들은 나처럼 늙어갈 테지만, 나는 그들처럼 젊어지지 않을 것이니 후회할 것 없다.

김현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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