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26 02:58 (금)
아직 배울 것이 있다
상태바
아직 배울 것이 있다
  • 전민일보
  • 승인 2017.09.13 09: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며칠 전 도서관 열람실에 올라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안에 있던 몇 사람의 눈길이 내게 쏠렸다. 내 나이 정도 될 듯한 남자가 가방을 든 내 행색을 보고는 혼잣말처럼 말을 건넸다.

“아직 배울 것이 남았나요?”

허 참, 허를 찔린 듯 머뭇거리다 나는 겨우 “심심풀이지요.” 하고 허공에 대고 대꾸했다.

‘아니 그쪽은 벌써 다 배웠나요? 배울 것이 없다니….’한 마디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공연히 시비하는 것 같아 입안으로 삼켰다.

그 사람은 더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가르침 중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悅乎)를 아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애들이 공부하는 도서관에 추레하게 앉아있을 늙은 꼬락서니가 안됐다 싶었는지 모른다.

이제 더 배울 것 없는 세상에 산다고 자만하는 것은 아닌지.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그 아니 즐거운가.’ 나는 요즘에야 성인의 가르침을 조금 깨친듯하다.

그 사람에게 있어 배움은 삶의 방편일 뿐이며, 쓸모 있는 지식만 배우면 되지 그 밖에 골치 아픈 것은 무엇 하러 알려고 하는가 싶은 눈치다.

그렇다. 노년의 삶은 더 배우려는 자와 더 배울 게 없다는 사람으로 나누어지는 게 아닌가.

나는 지금 생각으론 죽는 날까지 배울 것이라 장담한다. 책을 읽고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익히는 배움도 많겠지만, 문득문득 깨닫는 삶의 의미가 나를 더욱 익어가게 할 것이다. 그런 깨달음을 흘려버리지 않게 메모해두고 이를 잘 정리하는 게 나의 일상이다.

배운 것을 꼭 남에게 알려줄 생각은 없다. 그들도 스스로 배우고 깨우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늙어서의 배움은 남에게 듣는 것보다 자신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좋다.

가족 부양을 위해 애쓰는 아들과는 이런저런 인생 얘기를 나눌 틈이 없다. 가끔 불러주거나 찾아오는 딸과 대화하는 시간이 소중하다.

똑같은 얘기, 별 볼 일 없는 잡담으로 보내기보다는 새롭고 의미 있는 대화가 필요하다.

지난번 문우들과 강진 여행을 다녀오며 영랑 생가에서 사 온 《영랑시집》을 딸에게 선물했다. 수필가로서 젊은 사람 못지않은 감성을 가진 아비로 기억되고 싶어서다.

일주일에 한두 번 나가는 도서관 열람실이 내겐 창작의 공간이다.

조금씩 써놓은 수필을 다듬고 보충하며, 틈틈이 관련된 책을 골라 읽는다. 한 가지만 몰두하면 쉽게 지칠 수 있음을 경계한다.

처음 교사로 부임한 학교 교장실에서 신문지를 뒤적이며 대학노트에 뭔가를 적고 있는 교장선생을 보곤 했다. 여태껏 배울 것이 남았을까 의아했지만, 돌이켜보니 그게 당연한 일이었지 싶다. 교직을 떠나는 날까지, 세상을 하직하는 날까지 뭔가 배우는 교육자만이 후진들을 가르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배우고자 하는 것은 나 자신을 더 깊이 알고, 세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이다. 내년부터는 철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이유다. 나만의 철학이 정립되어야 할 테니까.

김현준 수필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2024 WYTF 전국유소년태권왕대회'서 실버태권도팀 활약
  • 군산 나포중 총동창회 화합 한마당 체육대회 성황
  • 기미잡티레이저 대신 집에서 장희빈미안법으로 얼굴 잡티제거?
  • 이수민, 군산새만금국제마라톤 여자부 풀코스 3연패 도전
  • 대한행정사회, 유사직역 통폐합주장에 반박 성명 발표
  • 맥주집창업 프랜차이즈 '치마이생', 체인점 창업비용 지원 프로모션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