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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刹那)와 불후(不朽)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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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刹那)와 불후(不朽) 사이
  • 전민일보
  • 승인 2017.09.06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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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쓴 글 중엔 예전에 본 내용도 있는 것 같다.’, ‘네 글을 읽다보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호한 경우가 있다.’두 친구와 맥주를 나누다 나온 얘기다. 물론 친구들은 나와 내 글에 대해 비난이 아닌 애정을 담아 해준 말들이다. 취중이지만 관련해 내입장을 설명했다.

친구들의 얘기가 아니더라도 표절, 매너리즘, 자기복제 그리고 자기검열은 창작과 비평에 있어 가장 경계해야 할 항목들이다. 나는 지금까지 과연 어떤 글들을 써온 것일까.

공자(孔子)는 ‘언어의 목적은 자신의 의사를 타인에게 전달하는 데 있다’고 규정하면서 그것을 사달(辭達)로 표현했다. 그런데 문자가 아닌 말의 전달은 공간과 시간적 제한이 따름은 물론 정확성에서도 의문이 생긴다. 지금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쓰는 글의 존재감이 느껴지는가.

인류의 자취를 얘기할 때 우리는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로 구분한다. 그리고 인류가 존재한 이래 대부분의 시간 영역은 선사시대에 속해있다. 그것은 기록이 곧 역사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런데 시대가 변했다. 정보의 홍수 속에 사는 우리는 더 이상 아무 기록에나 연연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정보가 만들어지고 유통되고 있기 때문이다. 죽간에 적혀있는 글자 하나에서 찾던 희열과 감동은 이제 정말 필요한 정보에 대한 취사선택의 필요성과 실천으로 옮겨갔다. 모든 기록이 곧 역사이던 시대는 종말을 고한 것이다.

대학 은사를 모시고 함께 한 식사자리에서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지내고 보니 잡문은 아무런 쓸모가 없어.”그 말씀을 듣고 떠올린 것은 내가 쓴 수많은 잡문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쓴 그 모든 글들이 정말 포말에 불과한 것들이었단 말인가. 내가 죽고 나서도 내 글을 읽어주는 누군가가 있을까. 그런데 정보의 생산과 공유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제한적이었던 조선시대에도 그것에 대한 고민을 담은 글을 찾을 수 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공자(孔子)가 살던 시대에도 있었다.

조선 중종(中宗)때 대사헌을 지낸 한숙(韓淑)이란 인물이 있다. 그의 사후에 발간된 문집인 [간이당집(簡易堂集) 서(序)]에서 장유(張維)는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자들이 걸핏하면 ‘사달(辭達)’을 구실로 삼곤 한다. ‘사달’이라는 말이 물론 성인께서 하신 말씀이긴 하다. 그러나 또 ‘말한 것이 문채가 나지 않으면 멀리 전해질 수 없다.’고는 유독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대저 자신의 의사를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었다면, 이제 그 바탕을 마련했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문채가 더 가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빈빈군자(彬彬君子)라고 일컬어지면서 후세에 불후(不朽)하게 전해질 수가 있겠는가.”

장유가 인용하고 있는 빈빈군자는 ‘본바탕과 아름다운 문채, 즉 내용과 형식이 훌륭하게 조화된 군자’라는 뜻이다. 여기서 장유는 후세에 남을만한 글은 단지 ‘자신의 의사를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단순한 정보의 전달과 어떻게 달라야할까.

[논어(論語) 옹야(雍也)]편에서 공자는 이렇게 부연하고 있다. “바탕이 문채를 압도하면 촌스럽게 되고, 문채가 바탕을 압도하면 겉치레에 흐르게 되나니, 문채와 바탕이 조화를 이룬 뒤에야 군자라고 할 수 있다.(質勝文則野文勝質則史文質彬彬然後君子)”

공자의 이 말은 후일 임마누엘 칸트에게로 연결된다. 다만 나는 칸트가 공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선 확인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개념 없는 직관(直觀)은 맹목이요, 직관없는 개념은 공허하다." 라는 너무도 유명한 이 정의에서 공자를 떠올리지 않기는 쉽지 않다.

이제 생각해본다. 내가 쓴 글의 바탕과 문체는 과연 어떠한가. 내용도 없고 문체는 상투적으로 쓰는 진부한 말의 향연에 불과하다면 그 어떤 생명성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당신의 글은 찰나(刹那)와 불후(不朽) 사이 어디쯤에 있나요?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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