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16 13:51 (화)
백제 왕도(百濟王都)와 자존감
상태바
백제 왕도(百濟王都)와 자존감
  • 전민일보
  • 승인 2017.09.04 10: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요즘 각자 살고 있는 주소를 물으면 똑 떨어지게 명확히 대답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지번 중심의 기존 주소에 익숙하던 사람들이 새로 시행중인 도로명 주소가 혼합되면서 혼란을 주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직도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도로명 주소, 그 이유 중에는 도로명 주소가 그 지역의 특성을 나타내거나 역사성을 제대로 담아 내지 못한데서 기인한다는 주장도 있다.

여하튼 우리나라의 고유지명은 기가 막힌다. 지명에는 과거의 역사를 담고 있고 미래를 예측하고 있음을 흔히 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지명이 교동(校洞)이다. 교동은 전국 여러 곳에 있기도 하지만 그 지명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예전의 학교라 할 수 있는 향교가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익산의 왕궁면이 왕궁 지명의 역사를 지니고 그간 숨죽여 왔던 곳이다. 왕궁리 유적이 오늘날 백제 왕궁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발굴조사를 시작한 1989년으로부터 15여년만에 지명대로 왕궁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문헌적으로는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에 기록되어 있었지만 국보 제289호인 왕궁리 5층 석탑이 자리잡고 있다 보니 왕궁보다는 그간 사찰로 인식해 왔던 것이 왕궁으로 바로 서는데까지 시간을 더디게 한 측면도 강하다.

그간 발굴된 궁성으로서의 유적은 성벽과 궁궐담장, 석축, 축대, 건물지가 발굴되는가 하면 금년에 개방한 왕궁의 정원인 후원 그리고 화장실과 공방유적이 발굴되었다.

또한 기와의 연화문 수막새 류와 중국제 청자편, 공방에서 사용하던 금·은, 유리제품 생산관련 유물 등이다.

그 중 가장 눈에 띠는 것은 최고의 관청기관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인장와류인 수부(首府)명 인장와이다. 인장 기와는 등면에 도장을 찍은 기와로서 백제 행정지역을 지칭하고나 그 쓰임을 지칭하는 기와이다. 수부(首府)명 기와는 곧 이 곳이 1400년 전 백제의 수도(首都)였음을 나타내는 증거인 셈이다.

엊그제 또 하나의 수부(首府)명 기와가 익산에서 출토되어 백제왕도였음이 다시 증명되었다. 익산시와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 연구소에서 추진한 익산시 금마면 익산토성(사적 제92호) 발굴조사에서 익산이 백제 무왕때 수도였음을 확인할 수 있는 수부(首府)명 기와가 나온 것이다. 발굴팀은 이 밖에도 서문지와 백제시대 초축성벽을 확인하였고 여기에서는 막새와 인장기와 등이 출토되었다.

수부(首府)명 기와는 충남 부여에서 왕궁으로 추정되는 관북리 유적과 피난성인 부소성에서 출토된 바 있다. 따라서 이번 익산 토성에서 출토된 수부(首府)명 기와는 익산의 왕궁유적에서 출토된 13점의 자료와 더불어 익산지역이 백제의 수도였음을 입증하는 주요한 자료로 평가하고 있다.

이 밖에 출토 유물로는 백제시대의 북사(北舍)명 토기편을 비롯하여 토제연가편, 삼족토기, 그릇받침 등이 출토되었다. 북사(北舍)명 토기는 부여 관북리와 부소산성에서 출토되었다는 점에서 역시 왕궁과 관계가 있는 유물로 추정하고 있다.

이처럼 익산시는 앞으로도 우리고장 익산이 백제왕도였음을 확인하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다. 이를 통해 호남의 3대 도시로서 익산시민의 자긍심을 회복하고 나아가 전북의 자존감을 지속적으로 높이여 나갈 계획이다.

김철모 익산부시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신천지예수교 전주교회-전북혈액원, 생명나눔업무 협약식
  • '2024 WYTF 전국유소년태권왕대회'서 실버태권도팀 활약
  • 남경호 목사, 개신교 청년 위한 신앙 어록집 ‘영감톡’ 출간
  • 옥천문화연구원, 순창군 금과면 일대 ‘지역미래유산답사’
  • 이수민, 군산새만금국제마라톤 여자부 풀코스 3연패 도전
  • ㈜제이케이코스메틱, 글로벌 B2B 플랫폼 알리바바닷컴과 글로벌 진출 협력계약 체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