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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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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와 딸
  • 전민일보
  • 승인 2017.08.18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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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부와 그보다 조금 덜 나이든 여인을 태운 택시는 쏜살같이 사라졌다.

“저런,…….”

옆에 앉은 나와 비슷한 연배의 여인네들 표정을 훑어봤다. 자기가 탈 버스를 기다릴 뿐이라는 듯 그저 무심한 모습이 내 오지랖을 나무라는 것 같아 머쓱해지고 말았다. 다 나은 것 같던 어깨가 다시 무거워져 물리치료를 마치고 나와 시내버스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승강장 건너편 종합병원에서 나온 듯 횡단보도 아닌 찻길을 손을 앞뒤로 흔들며 건너온 여인이 지나는 택시를 세웠다. 그 뒤로 노부부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걷는지 뛰는지 모를 걸음으로 여인이 잡은 택시를 향했다. 여인이 먼저 앞 좌석에 앉아 쾅 소리 나게 문을 닫은 뒤에야 노부부도 뒷문을 열고 느릿한 동작으로 들어가고 택시는 휙 떠났다.

분명 며느리일 거야, 아니 딸일 수도 있지. 뱉지도 삼키지도 못한 말을 머릿속에 묻었다.

‘봄볕엔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볕엔 딸 내보낸다.’ 라는 속담과 ‘며느리 밑씻개’라는 민망스런 이름의 풀과 ‘며느리밥풀꽃’에 얽힌 슬픈 전설을 생각한다.

자외선 강한 봄볕은 며느리에게 쐬게 한다. 고부가 밭을 매다 복통으로 급히 볼일을 본 며느리가 뒤처리를 위해 부드러운 콩잎을 부탁하자 가시 돋친 풀을 뜯어 주고, 뜸이 들었는지 밥알 하나 입에 넣은 며느리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모두가 며느리에 대한 시어머니의 몰인정을 넘어 잔혹한 이야기들이다.

시어머니 마음이란 다 그런 것일까? 착하고 예쁜 외며느리가 등창이 났으나 의원을 찾을 수 없는 가난한 살림이라 나을 만한 약초를 찾아서 온 산을 뒤지던 때 꿈속에서 나타난 신령의 안내로 캐온 풀을 찧어 바르자 완치가 되었다는 이야기에서 명명된 산자고(山慈姑)의 전설도 있는데. 젊은이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시 월드나 명절증후군이란 말은 시어머니나 시댁이 여전히 갑인 것 같지만 눈으로 보고 귀에 들리는 이야기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결혼 초의 외출은 대부분이 시부모님 모시고 병원 다니는 일이었다. 심한 병일 때는 병원을 하는 서울 큰아들네로 가셨지만, 연로하신 데다 같이 살다 보니 간단한 통원치료도 항상 동행하는 것이 일상이 되다시피 했다.

보는 이들이 딸이냐고 물으면 두 분 모두 그렇게 기쁜 표정을 지으며 내게 의지하는 모습이 꼭 어린아이 같아 귀찮다는 생각은 할 새도 없었다. 딸이 여섯이나 되었지만 딸 같은 며느리는 당연한 의무이기도 했다.

연배가 비슷한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는 같은 해 돌아가셨다. 오랜 병석에 계셨던 시어머니와 달리 친정어머니는 쓰러진 지 하루도 못 돼 운명하셨다.

결혼 전 그런 친정어머니의 고혈압치료를 위해 몇 번 동행할 때다.

친정어머니는 사람들이 며느리냐고 물으면 그때마다 “아니요, 시집을 안 가 내 속을 썩이는 막내딸이요”부끄러운 듯 말했다.

난 어머니를 쳐다보며 무언의 말대꾸를 했다.

‘시집 안 간 딸이 뭐가 부끄러운데요? 술과 담배를 안 하셨든가 진즉 끊었으면 이렇게 병원 올 일 없고 부끄러워할 일도 없지 않은가요?’

옛날 친정어머니와 같이 난 결혼 하지 않은 딸이 부끄럽지는 않지만 편한 마음은 아니다. 그런 딸과 지난해 여름 해외여행을 했다. 대학 때부터 떨어져 산 데다 전혀 다른 성격의 딸과 처음 하는 여행은 생각했던 설렘이나 즐거움을 넘는 세대 차랄까,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올해도 같이 가자 권하는 것을 그래서 애써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피했다.

온순하면서도 야무진 며느리는 체구가 작은 탓인지 나와 닮았다는 말을 듣는데 나는 속없이 그 말이 참 좋다. 많은 이가 표정이나 행동을 보며 고부 관계나 시댁을 짐작하는 것은 고정관념 때문일까? 아니면 딸이 며느리가 되고 며느리도 딸이었지만, 며느리는 결코 딸이 될 수 없고 딸이 며느리가 될 수는 없는 진리 때문인가.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혼자 자문해봐도 답은 없이 노부부와 함께 택시를 타고 떠난 여인은 며느리인지, 딸인지만 궁금했다.

이용미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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