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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속의 검은 부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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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속의 검은 부메랑
  • 전민일보
  • 승인 2017.08.08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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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기형도는 입 속에 검은 잎이 있다고 했다. 그의 시집을 읽고 있다보면 그의 아픔과 슬픔, 상실감이 특유의 문체와 어우러져 때로는 심경을 울리기도 하지만, 아득함과 함께 공허해 지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이런 시어를 입 속의 검은 잎이라고 말한다.

사랑을 이야기하기에도 벅찰 시인의 혀가 마주한 현실과 시대에 할퀴어져 검게 말라버리는 비극. 아마도 그의 시집에 마음이 문득 공허해지는 것은, 천재가 말하는 비극에 마주하는 글쟁이로서의 숙명일지 모른다.

혹자는 천재는 시기를 잘 만나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기형도 시인 역시 스스로를 자신의 시에 표현한 대로 땅에 앉지 못하고 공중의 여기저기를 쏘다니는 눈처럼 여겼을지 모른다.

받아주는 곳이 있어도 어느 곳에도 안착하지 않았던 삶. 그래서 그의 언어는 다른 사람에게 향하지 않고, 스스로를 더욱 외롭고 공허하게 만들었던 내면의 자신을 향해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쓸쓸함이 지나쳐 그의 혀가 생기를 잃고 말라가다가 결국에는 검게 썩은 것이 아닐까.

우리 입에도 검은 잎이 있다. 기형도 시인의 쓸쓸한 자기 언어와는 몹시 다른 언어습관으로 생긴 검은 잎이다. 우리의 잎은 나 자신을 향하는 말이 하는 타인을 향하는 말로 병들어가고 있다.

우리의 말이 병들면 입 속에 생기는 것이 과연 검은 잎뿐이랴. 검게 말라가는 혀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바로 ‘입 속의 부메랑’이다.

부메랑의 법칙은 표적물에 명중되지 않으면 원을 그리면서 제자리로 돌아오는 부메랑의 특징을 빗댄 사회학 용어로, ‘당신이 미소로 대하면 상대도 미소를 보낼 것이고 당신이 화난 얼굴을 보이면 상대도 불편한 얼굴로 대할 것이다.’라는 표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인간관계에서 뿐 아니라 우리의 사적 대화에서도 이 법칙은 존재한다.

우리는 흔히 상대방이 없는 자리에서 험담하는 것을 ‘뒷담화’한다고 표현한다.

뒷담화라는 말은 형태학적으로는 그 유래가 당구용어나 일본어가 우리만 ‘뒷-’이라는 접두어와 합성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처음에는 속어로 사용되던 바와 달리 대체어가 없을 만큼 보편적 용어로 자리 잡아 국어사전에서 검색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이러한 단어의 위상에서 뒷담화가 사람들의 언어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어마무시한지를 엿볼 수 있다.

실제로 직장인 5명 중 3명 이상이 하루 30분 이상을 뒷담화로 시간을 보낸다고 하니, 뒷담화를 남 말 좋아하는 몇몇 사람의 일과로 치부할 수준은 아닌 듯하다.

사실 뒷담화는 과도한 업무나 대인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거나 몹시 화가 나는 일을 당했을 때, 직접 공격하여 2차적 문제를 만들지 않고도 즉각적으로 분노를 해결하는 데 몹시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말로 푼다.’는 표현이 있다. 자신이 당한 부당하고 억울한 일을 다른 사람에게 험담으로 하소연하고, 긍정적으로 공감해주고 인정해주는 대답을 받았을 때 마음이 안정되는 효과를 즐겨 사용한다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많은 사람들이 뒷담화의 취미를 비록 떳떳하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뒷담화의 유혹에서 마냥 자유롭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뒷담화의 뒤에는 부메랑의 법칙이 도사리고 있다.

남의 험담을 하면 험담의 가장 큰 피해는 자신에게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뒷담화를 할 때 부정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함에 따라 마음도 부정적으로 변하기 되는데, 이 부정적인 마음에는 중독성이 있어 험담의 습관화가 되기 쉽다.

모이면 자꾸 다른 사람의 나쁜 점을 이야기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다른 사람의 별 것 아닌 작은 습관까지 비꼬게 되는 것이다. 억울함을 위로 받고자 시작한 뒷담화가, 그저 험담을 위한 험담으로 변질되는 순간이다.

또한 내가 나눈 뒷담화를 대상자가 알게 될까봐 전전긍긍하게 되며 오히려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게 되기도 한다.

한 번 ‘뒷담화를 잘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생기고 나면 사람들이 나와 대화할 때는 함께 험담에 참여해 주지만, 뒤에서는 내가 자신에 대해서도 험담을 할지 모른다는 마음에 진심을 담지 않은 표면적인 이야기만 나누는 경우도 있다.

누구든지 내가 면전에서의 태도와 뒤에서 하는 말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배신감을 느끼고 인간적인 호감과 신뢰가 떨어져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내 입이 뒷담화 습관으로 인해 병들어 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 보자. 뒷담화가 주는 짜릿한 쾌감에 취해 있을 때, 험담의 부메랑으로 인해 내 혀가 검은 잎으로 변해 있을지 모를 일이다.

부정적인 말과 생각은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제 3자를 통해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는 내 평가가 칭찬일지 험담일지 역시 나의 입과 혀가 결정한다는 것이다.

내 입의 검은 잎은 나를 더욱 외롭고 공허하게 만들 뿐이다. 내가 미처 모르고 떨어뜨린 말들이 내 입에서 검은 부메랑으로 변하고 있지는 않은지, 오늘도 내 입 속에 안부를 묻는다.

김한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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