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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생각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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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생각도 필요하다
  • 전민일보
  • 승인 2017.08.01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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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인 한 명이 강제 출국됐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추방된 것일까. 그는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건과 관련 최종 무죄판결을 받은 인물이다.

1998년 그는 다른 스리랑카 공범 2명과 함께 18세 여대생을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았다.

그리고 피해자는 그들에게서 벗어나다 트럭에 치여 숨졌다. 그가 무죄를 선고 받은 것은 정의의 문제와는 배치되는 법치주의의 산물이다.

그에게 무죄가 선고된 이유는 죄가 없어서가 아니고 오로지 공소시효 때문이다. 더불어 그와 함께 범죄를 저지른 공범 2명은 오래 전 불법체류 혐의로 이 땅을 떠나는 축복(?)을 누렸다.

남겨진 가해자도 이제 자신의 땅으로 자유의 몸이 되어 돌아가고 피해자와 남겨진 가족에게 남은 것은 이 땅이 얼마나 법치주의에 충실한 나라인가를 증명해준 것뿐이다.

문제는 사라진 정의의 문제다. 법치는 존재하지만 정의는 사라진 결과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나는 결코 우리사회의 법치주의 근간을 부정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번 결과는 ‘콜래트롤 데미지’정도로 치부할 사안일지도 모른다.

테러범에 의해 납치된 민항기가 롯데 타워를 향해 달려온다면 그것을 격추할 수밖에 없듯이 법치주의의 근간을 지키기 위해선 불가피했다고.

그런데 사라진 정의의 문제는 추방된 스리랑카인에게만 국한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인륜도 저버린 흉악범에 대한 사형은 여전히 집행되지 않고 있다. 아이러니하지만 그것은 법치주의에도 반한다.

한국은 사형제가 분명 존재하고 사법부에서 최종적인 확정판결을 했기 때문이다.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흉악한 범죄자에게까지 기꺼이 무죄를 선고하고 그에 따라 그를 고국으로 안전하게 돌려보내는 것과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치인가.

최소한의 응보주의는 야만이 아니다. 탈리오의 법칙도 출발은 인도주의적 사고에서 출발한다.

과도한 복수를 제한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분명 인권의식의 혁명적 진전이다. 현대에 와서 개인에 의한 복수를 제한하고 불법화한 것은 그 전제가 공권력이 그것을 대행한다는 믿음에서다.

물론 그것은 제도화된 절차와 절제된 방식을 통해 이뤄져야한다. 사람을 죽인다고 다 사형을 선고받는 것이 아니다.

극단적인 흉악범이 아닌 한 사형선고를 받는 살인범은 거의 없다.

유영철, 강호순 같은 자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하는 것은 사회가 마땅히 해야 할 최소한의 응보다.

나는 우리 사회의 성직자와 인권운동가의 숭고한 정신을 결코 폄하하지 않는다.

다만, 사회구성원의 역할은 제각기 다른 영역에 속한 문제다. 이런 사고가 인권의식이 빈약한 내 소양 탓이라면 기꺼이 비난을 감수하겠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기 싫어서라면 그것은 너무도 무책임한 일이다. 아무도 슬프지 않은 정의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H. D. 도로우는 [시민의 불복종]에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법의 존중을 정의의 존중인 것 같이 장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도로우가 얘기한 법치와 정의가 앞의 예와 꼭 부합하는 것 인가와는 별개로 ‘정의가 사라진 법치’는 그 자체가 사회의 안정을 파괴한다.

사회구성원이 그 사회가 공식적이고 제도적 방안을 통해 정의를 지켜주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그 사회의 법치는 이미 정당성을 상실한다. 법치로 구현하는 정의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때로 나는 쓸모없는 생각에 빠진다. 그럼에도 그것이 필요한 이유가 있다면 유수원(柳壽垣)이 쓴 [우서(迂書)]에 나오는 한 토막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천하의 모든 일은 참으로 그 이치가 있으면 반드시 그 말이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 세간(世間)에 반드시 이러한 이치가 있으므로 부득이 말하는 것이니, 시행될 수 있고 없음은 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 옛날 군자(君子)들은 대개 많은 책을 저술하였는데, 그들이 어찌 당초부터 시행될 수 있고 없음을 헤아렸겠는가. 요는, 마음에 쌓이고 맺힌 바 있으나 이를 펼 수 없어서 부득이 글로 기록하여 스스로 성찰하였던 것뿐이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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